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할까? 재촉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고, 쓸쓸하고 외롭고, 옛 추억이 생각나며, 매년 오는 가을이지만 이번 가을을 유난히 더 깊고 쓸쓸하게 느끼며 가슴 시리다는 남자들이 내 주변에는 의외로 많다. 물리학자들은 남자가 가을을 타는 원인을 태양이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으며 지구가 추분(秋分)을 정점(頂點)으로 태양이 남반부에 더 가까워지므로 북반부에 사는 한국남자들은 태양이 주던 따스함을 덜 받게 되고 햇빛을 적게 받으면서 뇌에서는 세라토닌 생성을 감소시키므로 이것이 우울감을 만들고 또한 어둠이 증가하면 머리에서는 멜라토닌을 과도하게 생성(生成)하여 졸림과 무기력함을 조장하게 되는데, 멜라토닌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저하시켜 남성이 여성적인 취향에 사로잡혀 감성적으로 변한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온갖 상념에 사로잡히고, 옛 사랑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낙엽 길을 홀로 걷기도 한다. 남성호르몬의 저하는 그만큼 밝은 기분보다는 쓸쓸함과 고독감이 밀려오게 한다. 반대로 여자들이 봄을 탄다는 것도 겨울동안에 적은 량의 햇볕을 보다가 봄이 되어 빛의 양이 점점 증가함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계절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우울해지는 변화를 계절성 우울증(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은 한여름에 햇볕이 많은 시기를 보내다가 갑자기 햇볕의 양이 감소함으로써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심각한 우울감까지 남녀 구분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남자들이 가을을 탄다고 하는 이유는 이 시기를 제외하면 우울증의 유병률(有病率)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전환되는 시기에 SAD 증상을 겪는데, 무기력함, 우울감, 권태로움 등으로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집중하기 힘들고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급격한 식욕의 변화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불면증이나 수면 중에 자주 깨는 수면장애로 발전할 수도 있다. 보통은 가을이 깊어지면 뇌도 그것에 적응하여 다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지만 유난히 계절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심각한 우울증, 대인기피증, 과도한 식욕으로 비만도가 증가하거나 심지어는 자살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1년 중 11월에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유가 SAD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남자들이 겪는 가을 타기는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것이지만, 계절성 우울증을 쉽게 극복하기 위해서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기보다는 하루 30분 이상 햇빛을 충분히 쐬어 주는 것이 좋다. 운동을 통해 땀의 배출과 신경을 분산시킬 수 있는 취미생활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SAD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가을은 남자들에게 탈모의 계절이기도 한데 가을철 환절기는 일반적으로 탈모증세가 심해지는 시기다. 여름철의 자외선으로 손상됐던 모발이 가을철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만나면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바람 때문에 왠지 허전하고 뒹구는 낙엽으로 마음은 더욱 심란하고 쓸쓸한데 머리털까지 빠지니 남자들은 가을을 탈 수밖에 없다. 비록 머리카락이 빠지고 남성호르몬이 줄어들지라도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가을의 고독함과 쓸쓸함이 없다면 인생의 고즈넉한 맛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점점 깊어지는 올 가을저녁에는 쓸쓸함을 함께 달래려 가족처럼 소중한 주변의 절친한 지인들과 술 한잔, 차 한잔 이라도 함께 하며 좋은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최영걸
속초시사회복지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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