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우리말인 ‘누리’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을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과 보육을 통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무상보육과정 제도를 ‘누리과정’이라 명명한 이유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모든 만3세~5세 어린이들은 같은 내용을 배우고,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교육 보육비를 지원하도록 정책을 세웠다. 하지만 1월 19일 현재,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 경기, 광주 3곳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예산을 모두 편성하지 못했고, 강원, 전북은 유치원 예산만 편성한 상태이며, 부산, 인천, 충북, 전남, 경남, 제주 등은 일부만 편성한 상태이다. ‘보육대란’ 우려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와 시·도 교육청간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은 크게 두 가지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정부는 보육의 개념에는 교육이 포함되어있으므로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에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교부금을 시·도 교육청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시·도 교육청 입장은 어린이 집은 교육기관 또는 교육행정기관이 아닌 보육기관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육청이 어린이 집 누리과정을 교부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라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정부는 이미 지난해 누리과정 소요예산 전액을 예정 교부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도 교육청은 일반적인 교부금을 받는 것이지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서 교부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누리과정 예산 집행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현 정부가 대통령 후보와 당선인 시절 국민들에게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지방 재정 부담 충분히 감안한 재원조달…’ 등을 약속했었다. 2015년 누리과정이 모두 교육부로 이관되었고, 이에 교육부가 2015년 기획재정부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2조 2000억 원을 요구하였지만 전액 삭감되었다. 현재 교육부는 별도 추가 예산 편성 없이 시·도 교육청에게 기존 교부금을 쪼개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 부족으로 인해 교육사업에 투자할 재원마저 부족한 시·도 교육청 입장에서는 누리과정 예산 자체 편성이 불가능한 것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다. 강원도교육청만 하더라도 2016년 부채 규모가 55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으로 전달되고 있다. 누리과정 당사자인 학부모와 보육교사들은 당장 올 1월부터 누리과정예산의 중단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살림이 빠듯한 가정의 경우에는 예산지원이 안 되면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며, 보육교사들은 예산 지원의 중단으로 인해 사립유치원이나 어린이 집 운영이 어려울 경우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더 큰 문제는 누리과정 예산으로 인한 일선 교육현장의 어려움들이다. 지난 13일 교육부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공시된 2012~2014년 전국 시·도 교육청 사업별 세출 결산 자료를 살펴보면 누리과정 예산 편성으로 인한 일선 학교 교육의 어려움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직업진로교육과정 예산 지출 감소율이 3년 새 84.1%, 교수학습활동지원 예산이 32.1%, 교육청 및 지역교육청 등 기관운영비 18.3%, 도서관 등 평생교육시설 운영 예산이 12.6% 씩 줄어들었다. 교육현장에서 주요 사업별 예산이 줄어든 주된 이유는 대통령 공약 사업인 누리과정 및 초등돌봄교실 예산을 포함한 방과후학교 운영 예산 지출 때문이다. 일선 교육활동이 위축되어 교육의 질이 저해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 어린이 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총 1800억 원 가량을 부담하였다. 이로 인해 초·중·고 학생들의 진로·진학활동을 돕고 교사들의 수업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사업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2016년 강원도교육청 주요사업 중 ‘학생안전관련 예산, 교원복지 예산, 학부모교육 예산, 건강실무사인건비지원 예산, 고교친환경무상급식지원 예산’ 등이 대폭 삭감되었다. 특히, 우리 지역 속초에 전국 최초로 세워지며, 진로교육의 메카로 자리 매김할 강원학생진로교육원이 예산 삭감과 설립 조례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취학 전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꿈과 희망을 누리게 하기 위한 누리과정의 본래 취지를 위해서라도 일선 학교현장의 질 높은 교육환경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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