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어려운 시절에 학교 다니느라 어지간히 부모님을 고생시켜드렸다. 학교 등록금과 생활비 등은 대부분 고향 부모님이 보내주신 돈(향토 장학금)이었다. 향토 장학금으로 시골집과 고향 재정을 축내며 공부했다.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소의 뼈로 쌓은 탑(우골탑 牛骨塔)이라는 말처럼 자식의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식같이 기르며 농기구를 대신하던 소와 같이 집안의 큰 재산을 파는 일은 대부분 농촌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직장을 얻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때 일을 잊는다. 심지어 혼자 잘나고 혼자 노력해 이룬 것처럼 으스대기까지 한다. 나도 그랬다.
그 후로는 둥지를 떠난 새처럼 고향을 버렸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서 숙제하듯이 열심히 벌어 살만큼의 알량한 자산만 모았다. 고향 입장에서 보면 먹튀를 한 셈이다. 고향이 없었다면, 부모가 없었다면 어디를 근거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떻게 지금의 나로 자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고향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사람들은 고향의 발전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재능기부도 하고 투자도 하고 당신이 자라서 출향한 후 비워둔 자리에 인구도 채우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인구를 유입시키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향에서는 어떠했을까? 지역에서도 출향인사를 활용할 의지가 없었으며 오히려 경쟁자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참여를 배척하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나비효과
우리 지역은 생활환경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실제보다 저 평가되었다. 살기 좋은 지역이라는 유인을 만들고 이를 알리자. 나뿐만 아니라 남의 일도 훌륭하고 선하고 모범적인 일에는 적극적으로 알려 소통하며 긍정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로 이를 본받으려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겸연쩍어하는 전형적 샤이한 행동을 하고 있다. 선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는 보람과 성취감 자긍심을 가지고, 사회에서는 본보기로 삼아 이를 배우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 일이다. 이런 작고 선한 나비의 날갯짓이 영동과 태백을 넘어 전국으로 바람을 일으켜 선한 영향을 주어, 지역이 바른 평가를 받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지역의 인구 문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현안을 해결하는 것에 인재가 부족하면 이것 또한 여러 명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나비의 날갯짓을 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본래 모습을 알려 생활환경이 좋고 정 많고 친절하고 따뜻한 살기 좋은 곳이라는 본래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인구가 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변함없이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유하고 훌륭한 자연이라는 큰 자산이 있다.
인재풀의 확충
그동안 우리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게을렀고, 있는 출향 인재도 관리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제라도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인재풀을 활용하면 좋겠다. 설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퇴임한 베이비 부머가 의외로 많이 있으니 이들을 찾고 섭외하여 이주를 권유하고, 안되면 속초를 자주 찾는 설악의 경제소비자로 만들고 재능기부도 받자.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난하게 사람을 귀히 여기고 관리하면 인구가 유입될 것이다.
지역 발전 태스크 포스 팀(Task Force Team)을 구성하자. 우리의 현재 입지가 부족하니 잃을 게 없기에 두려움도 없다. 첨단 기술인 생성형 AI(챗GPT같은 것)를 사용하는 것도 좋겠다. 대도시의 자치단체와 자매결연도 맺고 도움도 주고받자. 그룹도 만들어 함께하며 서로 유익한 정보교환으로 활력도 얻고 생활이나 기업 운영에도 활용하자. 지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한 경제공동체를 운영하는 것도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에 살며 주소를 고향으로 옮기고 가끔 체류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위법이라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출향인을 모두 주민으로 생각하고 경제소비자나 생산자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호머 사피엔스가 자기보다 힘도 세고 체격이 큰 네안델타르인을 물리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약하고 작지만 뭉쳐서 맞서 싸우는 사회생활을 했기에 가능했다.
노인과 바다
출산율이 낮아 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쇼크’는 되돌리기 어려운 세계적 메가 트렌드이지만, 대학 교육 적령기의 젊은층마저 온전히 타지역으로 유학을 떠나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지역 내에 대학(고성에 몇 개 과만)이 없어 고졸 나이(18세)면 진학을 위해 젊은이 모두 고향을 떠나야 하니 속초는 말 그대로 ‘노인과 바다’밖에는 없다.
노인(산티아고)은 94일을 바다에서 사투를 벌여 청새치를 잡았으나 상어에게 뜯겨 살 없는 뼈만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는가. 지역 주민들은 삼·사 개월이 아니라 평생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진 것 없이 노쇠해 빈곤층으로 노년을 맞고 있으니 지역사회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의 기시감(데자뷰)이 들기까지 한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과 대학 진학을 위해 떠나는 학생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국·공립의 사학(정규교육기관이 아닌 학원급)이나 지역사회의 맞춤형 전문직의 대학이라도 설립하는 방법은 없을까? 우수한 대학을 설립하고 좋은 일자리를 가진 기업을 유치하면 좋겠지만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이 차량이라 고속도로만 설치하려 했고 우리가 소원했던 철도는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설치를 미루어 왔다. 그러나 차량은 시도 때도 없이 지·정체가 되니 도착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동서고속철도라는 그동안 우리가 가져보지 못했던 철도가 2027년에 개통된다. 이제야 정말 서울이 가까운 이웃 도시가 된다. 차량교통에 비교할 수 없는 교통수단이다. 이 기회를 잘 준비하고 활용해야 한다.
세부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는 전문성 있는 분들과 많은 토론에 맡기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고자 한다.
시니어가 살기 좋은 도시
젊은이들은 일자리(먹이)를 찾아 대도시로 몰리고 도시에서는 감당 안 되는 주거지(둥지) 때문에 그 도시를 떠나 지방에서 둥지를 찾는다. 이런 현상은 우리와 무관치 않다.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역사 부근이나 젊은이들이 근무하기 좋은 곳에 거점 오피스 건물을 지어 원격근무를 할 수 있도록 공유사무실을 설치하여 젊은이들의 삶을 유치하면 어떨까? 노동생산력이 왕성한 청소년과 젊은 층의 출향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유입대책을 찾는 한편, 퇴임하는 베이비부머를 목표로 전문 시니어 시티 정책을 쓰자.
고속전철이 개통되는 시기에 맞춰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을 모시는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시니어도시 형성도 시의적절하다. 아예, ‘노인과 바다’의 대표 도시(질 좋고 훌륭한 바다는 있으니)로 노인을 모시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은 서울보다 주거비가 적게 들고 기후와 자연경관이 좋은 지역에서 살기를 원한다.
건강하면서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노년층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이 지혜롭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소비성향도 적극적이며 온화하고 경륜이 많은 노년이라 훌륭한 자원이다. 시니어들의 경륜과 전문성도 지역에 도움이 되고, 생산성 있는 우수 인력 확충도 바랄 수 있다.
시니어들이 요구하는 문화나 의료의 중심도시(예로 서울)는 고속철도의 교통시설로 시간을 줄여 가깝게 옆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지역의 노년층을 문화·예술·교육 및 취미활동에 참여시켜 더 좋은 지역문화를 만들 수도 있다. 시니어 도시가 되면 시니어의 생활을 보조하는 일자리도 생기고 젊은 인구 유입도 기대된다. 시니어 케어기업 스스로 준비하면 기본 의료자원도 확충할 수 있다. 중환자는 고속철을 이용해 가까워진 서울로 이송하면 된다.
이런 업무를 전담할 인구정책부서를 만들어 단체장 직속으로 두면 어떨까. 늦거나 어렵거나 틀릴 수는 있겠지만 안되는 것은 없다. 속초를 사랑하는 모든 관계자가 진심으로 고민하고 머리를 맞댄다면 틀림없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지도자들과 행정기관의 몫이니, 이 기고는 나의 작은 날갯짓일 뿐이다.
김승수
설악신문 서울 주재원
한국산림탄소협회 서울지부장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