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황홀한 순간이라는 표현이 가장 맞을 듯 싶다. 9월 말부터 10월초까지 속초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한 3편의 신작(런갯마당의 <못다핀 꽃>도 이 기간에 공연하였지만 지난해 초연작품) 공연은 가을 속초의 또 다른 공연축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특히, 세 작품 모두 지역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공연장르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 속초시립풍물단 ‘만선’(9월23일)=제목 그대로 동해안 어부의 삶과 희망을 타악 퍼포먼스로 만든 작품이다. 풍어의 꿈을 안고 뱃고사를 시작으로 출어하는 뱃사람들. 선상생활의 고달픔과 풍랑의 위협을 때로는 경쾌한 타악의 리듬으로,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에너지로 표현했다. 다양한 가락이 청소도구와 통발, 미끼통과 만나면서 새로운 무대경험을 제공했다. 속초시립풍물단은 하루 두번의 정기공연과 속초시의 각종 행사에서 공연을 한다. 순수 예술을 위한 창작의 절대시간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도 예인 특유의 창작열망으로 매년 좋은 공연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번 작품의 특징을 말하자면 인기 방송인 백종원의 ‘만능간장’같다고 할까? 백종원 요리의 특징은 고급화보다 빠른 시간 안에 보편적인 입맛을 지향한다는 점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속초시립풍물단의 공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워낙 기본이 탄탄하기에 어떤 소재와 만나도 특유의 에너지와 기교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퍼포먼스와 무대의 조화, 주제 표현을 통한 새로운 작품이라기보다 상황과 소재만 달리한 속초시립풍물단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상황의 한계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다만, 이런 작품이 구속초수협의 마당이나, 대포항에서 펼쳐진다면 최상이라는 점도 덧붙인다.
■ 강원도립극단 ‘메밀꽃 필 무렵’(10월 2일)=강원도립극단 <메밀꽃 필 무렵>은 신명나는 장구장단으로 시작해 화려한 뮤지컬, 질펀한 성인개그와 애환의 뽕끼, 현대무용이 쉴 새 없이 나오는 백화점식 구성이 특징이다. 백화점식 구성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작품의 배경이 전통5일장이 아닌가. 그곳에는 고개 너머 이웃의 속사정과 우정, 온갖 진귀한 물건이 넘쳐나는 우리네 원조 페스티벌 무대이다. 약장수의 화려한 입담과 서커스의 퍼포먼스, 남녀의 로맨스가 순수 자연을 배경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원작 <메밀꽃 필 무렵>은 우리 단편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절창이라고 불리는 이효석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적인 언어로 두 남자의 알듯 모를 듯한 애환과 안타까운 정서를 얹어 우리네 서정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강원도립극단의 전략은 명확하다. 장날 마당에 놓아도 좋을 무대구성,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서와 언어로 다양한 재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 전략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보인다. 객석을 메운 관객 모두 함박진 웃음과 박수를 치며 공연 내내 장날 분위기를 연출했으니 말이다.
■ 속초문화예술네트워크 ‘꿈꾸는 사자, 속초를 거닐다’(10월5일)=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우리는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자를 만난다. 귀신을 쫓는다는 벽사진경의 상징동물 사자가 실향의 애환과 그리움의 열병을 앓는 속초의 사자로 재탄생한 것이다. 속초문화예술네트워크의 <꿈꾸는 사자, 속초를 거닐다>는 기획단계부터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속초 연극을 전국 최강으로 만든 변유정 연출과 스탭이 속초의 국악 예인들과 함께 만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강원도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으로 실시하는 1시군 1문화행사의 속초 대표공연으로 선정되었다.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첫번째 시연을 한 후 제51회 설악문화제 초청공연으로 속초시민과 만났다. 그리움의 열병을 앓는 속초북청사자가 천년의 시간여행을 온 화랑 영랑과 만나는 과정이 주요 이야기이다. 런갯마당 현악팀의 라이브 연주, 북청사자놀음의 새로운 해석, 기존 풍물놀이를 극의 전개와 배치하는 영리한 연출이 돋보였다. 기존의 북청사자 의미와 연주는 그대로 가져오며 지역성이 반영된 스토리텔링도 지역 공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이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속초시립풍물단의 창작공연 ‘만선’.
강원도립극단의 퓨전코믹극 ‘메밀꽃 필 무렵’.
속초문화예술네트워크의 ‘꿈꾸는 사자, 속초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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