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올해 눈이 많이 왔다.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이 2020년 발간한 <고성군지> 별책부록 ‘사료집’ <택당선생유고(澤堂先生遺稿)> ‘간성지(杆城志)’ 잡기(雜記)에 미시령 눈사태에서 살아남은 애남이 생존기가 수록되어 있다. 김광섭 향토사학자가 번역한 내용을 소개한다. 여기서 미시파령은 미시령의 옛 지명이다.
“군(郡)의 땅인 모든 고개는 모두 천하의 한계를 이른 곳이니, 겨울에는 눈으로 막혀 다니지 못하고 오직 미시파령(彌時坡嶺)만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다. 양양과 간성의 진공(進貢)이 모두 이러한 이유로 미시파령의 요새를 지나는데, 말은 버려두고 일꾼을 이용해 짐을 지워서 인제의 남교역(嵐橋驛)에 도착해 다시 말을 빌려 짐을 실으므로, 항상 우후에 책임이 크게 일어 민졸들이 눈을 밟고 호송하는 것이 군(郡)의 겨울철 큰 역사였다. 바야흐로 큰 눈이 올 때 우뚝 솟은 고개에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이 쌓여 아무 곳 없이 온 절벽과 계곡에 하나 같이 백 길 가량의 나무들이 겨우 가지만 드러내면, 이때는 관공과 민간의 여행길이 모두 끊기고 오랫동안 얼음이 쌓이는데, 주민들이 나무를 따라 차츰 옛길을 인식하고 오솔길을 내어 말을 묶고 짐을 실어 겨우 길을 넘어가는데 발을 헛디디면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다.
또한 눈사태의 위험이 있는데, 사람이 다니는 고갯길 중 험난한 계곡 아래 면에 눈이 쌓이면 혹은 바람이 일어서, 혹은 햇빛에 녹아 바야흐로 틈새가 생기는데, 인마가 다니다가 그 발로 건드리면 천백길이나 쌓인 절벽 눈이 반동으로 한꺼번에 붕괴되어 내려앉는다. 그 피해가 특히 많은 인파가 다닐 때 극심한데, 매양 절벽꼭대기의 나무 끝에 눈 뭉치가 계란처럼 여러 개가 원으로 뭉쳐져 떨어지면 산의 눈이 붕괴되는 조짐이다. 전조가 있으면 달아나고 눈사태가 일어나면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 눈사태를 당해 비록 미리 예지해서 잘 피했다고 하더라도 난리에 더욱 행상과 역졸이 길을 찾아 나아가다가 혹여 큰 눈바람을 맞게 되어 얼어 죽는다.
대저 한 해의 겨울과 봄 사이에 죽는 자들이 4, 5인이고, 말은 십 수 마리이다. 만력(萬曆) 갑오년(1594, 선조 27) 봄에 진상을 담당한 향리와 역졸 18명이 압사하였고, 숭정(崇禎) 신미년(1631, 인조 9) 겨울 강릉에 부임한 서군(西軍) 30인이 매몰되었는데 때마침 호송인이 와서 그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임신년(1632, 인조 10) 12월 초 10일에 토성촌(土城村)의 천민인 애남(愛男)이는 나이가 18세였는데, 그 아비를 따라서 행상을 가다가 고개를 넘는 도중에 눈사태를 당해서 아비는 달아나 살아났으나 애남이와 그 말은 수백 척 밑의 눈에 깔려 죽었다.
마침 말안장에 매여 있던 통이 코 쪽에 닿아 숨을 쉴 수 있었고 숨통이 트인 지 며칠이 지나 다시 회생할 수 있었는데, 쌓인 눈의 훈훈한 기운으로 틈을 만들어서 몸을 편 다음, 안장으로 자리를 만들고 눈 조각을 씹으며 주린 채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그중에도 역시 낮과 밤, 어두움과 밝음이 있었지만, 심한 추위는 깨닫지 못했다. 그 아버지는 그가 살아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 슬픔을 토로하며 제단을 설치하고 부처님께 염불을 드렸으며, 장정을 구해 염습할 기구를 갖추어 시체를 찾으려고 연일 그 곳을 사방으로 곧게 파헤치다가 조그마한 구멍을 뚫자 애남이가 울부짖었다.
마을의 장정들이 그를 귀신으로 의심해서 요사하게 여겨서 흩어져 감히 접근하지 못하다가 서서히 물었다 “너는 누구냐” 이르길 “나는 애남이오” 이르길 “과연 애남이라면 마땅히 표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하니 애남이가 썼던 패랭이 모자를 끄집어 보여주니 바야흐로 귀신이 아님을 알게 되고 마침내 구멍을 열어 그를 구해주었다. 대개 처음에 눈에 깔렸을 적부터 무릇 9일 낮 9일 밤이 지나도록 매몰되어 쌓인 눈 속에서 먹지 못했지만 죽지 않았으니 고금에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번역자 김광섭 향토사학자는 애남이가 실존인물이라 했다. 위 잡기는 <택당선생유고(澤堂先生遺稿)> ‘간성지(杆城志)’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다. 택당이 1631년 간성현감(杆城縣監) 때에 편찬한 읍지(邑誌)로 총 49장에 이른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원문서비스 택당선생유고간여(澤堂先生遺稿刊餘) 청구기호:古3428-67Aa-v.1-9, 디지털자료에서 원문이미지나 원문텍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최철재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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