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익 재경 양양군민회 회장.
“관광은 굴뚝 없는 산업이며 수익성도 큽니다. 양양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고,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말투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는 원가 없는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연어의 회귀
연어는 오랜 기간 거친 파도와 싸우며 천적을 피해 도망치다 다치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극복하면서 한층 강하고 성숙해진 후 고향을 찾는다. 슬프고 외로웠던 청소년기를 넘어지면 일어나 걷고 인내를 다짐하며 꿋꿋하게 살아내 공부와 기업 경영으로 성공도 이루었다. 노년을 고향에서 살겠다고 말하는 기업인 노승익(67) 재경 양양군민회장의 삶이 바로 연어의 삶이 아닌가 싶다.
노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지난 연말 축제를 위한 행사 준비로 붐비고 있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크리스마스-트리 앞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서로가 초면이니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이곳으로 정한 것이다. 명함을 건네고 고향 얘기를 시작하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받은 명함에는 직함이 없어 평사원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는데 겸손한 마음에서 대표직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전형적인 영북지역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노승익 회장은 중소기업 대표이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나왔다. 꾸밈없고 담백한 모습은 순수해 보였다. 남에게는 한없이 베풀고 나에게는 끊임없이 강해지기를 다짐하는 내유외강(內柔外剛)의 소유자다. 강인한 성품에 겸손하고 순수함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런 출향인사들이 행하는 좋은 일, 성공한 일, 선한 일을 널리 자랑하고 알려 지역에 본보기로 삼아(나비효과) 더 많은 훌륭한 출향인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나는 노 회장에 관한 궁금한 점을 하나하나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 회장이 자랄 때는 학교가 멀고 교통수단이 빈약해 등하교가 어려웠을 텐데 청소년기를 어떻게 지냈는지.
△양양 조산리 낙산해수욕장 입구 솔밭에 위치한 곳에서 태어나 숲이 내 놀이터였다. 하지만 집이 7번 국도 옆이라 교통사고 위험이 내재해 있어 가족 모두의 삶이 조심스러웠다. 초등학교는 가까이 있어 걸어 다녔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내 일생에 제일 슬픈 일을 겪었다. 중·고등학교는 양양 읍내에 있어 친구들과 어울려 걸어 다녔다. 학교를 오가며 장난도 치고 숨어 있다가 여자친구들을 짓궂게 놀래키기도 했다. 집에 오면 심부름하기 싫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집에 늦게 오곤 했다. 아버지한테 졸라 자전거를 선물로 받고는 하늘을 날 것 같았으며 이후로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인생은 연습이 없고, 사회생활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회생활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고등하교 진학을 하면서 철도 들고 부친의 영향도 있어 제법 공부도 잘했다. 가족들과 주변의 권유가 있던 차에 졸업 후 취업하기 쉽고 사업 전망이 좋다고 생각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졸업하면서 SKC(선경화학주식회사)의 취업공고를 보고 지원해 기계설비 분야에 입사했다. 당시 제조업 경기가 좋아 실적도 높았고 많은 신기술도 접했으며 급여도 많이 받았다.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복지 및 후생과 대우가 업계에선 최고였다. 교우관계가 좋아 10여년 동안 한 부서에서 근무하며 직장 내 바둑, 테니스, 등산 등 동호회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인구는 적지만 역사가 깊고 독특한 문화가 있는 양양군의 재경군민회를 소개하고 회장직을 맡게 된 동기와 포부, 회원들에게 당부나 공지할 말씀은.
△코로나가 끝나고 어려운 시기에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군민회장을 맡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고 생각해 회장직을 맡기로 결정했다. 최현규 사무총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군민회가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회원들의 단합도 잘 되고 있다. 이렇게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으나 내 사업을 하면서 군민회를 이끌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군민회 운영에 미비한 점도 있을 것이다.
2023년 3월 17일 취임하고 1주년이 되는데 2024년엔 연어축제, 송이축제, 고향사랑 기부제 참여, 전통시장 방문 등 지역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모임도 자주 개최하여 회원의 친목과 참가 회원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군민회는 양양군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애향심을 기반으로 정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 돕고 정보도 교환하는 등 상호 교류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등록회원수는 1,500명으로 봄가을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고향 소재 초·중·고등학교에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군민회 회원들은 양양의 정기를 받아 의기양양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며 회장을 비롯해 임원들도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회원들도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친목을 도모하시기를 부탁한다. 언제 어디서나 서로 정을 나누며 자긍심을 가지고 활기차게 멋지고 행복한 생활을 바란다.
-고향에 많은 기부와 봉사를 했다고 들었다. 동기와 가르침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교사인 부친이 가족 돌보는 데 소홀하면서 보육원이나 담임 학생들을 돌보며 보호하는 것을 봐 왔다. 당시에는 가족에 대한 부친의 냉혹함과 사랑의 결핍에 대한 외로움에 속상해했는데 그러면서도 봉사라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워온 것 같다. 부친의 친필가훈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라’를 보고 자라서인지 무언가 사회에 봉사와 희생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있고 없음을 떠나 마음이 중요하다. 이런 마음은 이웃을 아끼고 보살핌으로부터 싹튼다. 생활비에서 일부를 모아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하기 시작해야 기부하는 습관을 만들고 지속적인 기부가 된다. 2009년 양양중·고교 공간관에 컴퓨터 학습시설(약 1억5천만원 상당)을 기증하였으며 2013년에는 많은 국가대표를 배출한 양양중·고교 사이클부에 27인승 버스도 기증했다. 기회가 되는 대로 계속 기부할 생각이다.
-살아오면서 제일 슬펐던 일이 있었다는데 그 일과 기뻤던 일도 함께 말씀한다면.
△철모르고 한창 응석을 부리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랄 초등학교 5학년(11세)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교통량이 많은 국도 옆에 살았기 때문에 어머님은 우리 형제들에게 차를 조심시켰는데 불행히도 어머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가 제일 슬펐다. 우리는 세상을 잃은 것 같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초·중학교 소년기를 주눅 들고 말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학업에도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학업성적도 바닥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첫딸을 낳아 아내가 잘 키워서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있어 입학이 어렵다는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나는 부모님의 덕이 나의 세대에 은덕을 입은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행복했고 부모님에게 효도한 것 같아 제일 기뻤다.
-어떤 연유로 현재 운영하는 회사를 설립했고 회사의 업종은 무엇인지.
△졸업과 동시에 입사해서 근무하게 된 선경화학(주)에서 실무를 익혀온 기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1994년 명진엔지니어링이라는 개인회사를 설립했다. 경기가 좋아 많은 수익을 올렸으나 용역회사라 한계를 느껴, 전망이 좋은 제품 생산으로 사업을 다변화했다.
규모를 키워 2006년 6월 디에스코텍(주)를 설립해 기능성 필름을 생산하여 삼성의 1차밴더(신화인터텍)에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 매출 200억까지도 실적을 올렸으며, 현재로는 코로나로 인한 경기 불황에 경쟁사가 난립하여 2023년엔 50억 정도 매출이 발생했다. 명진엔지니어링회사은 2018년에 폐업했으며 디에스코텍에서 LED 필름 생산과 다른 부품도 생산해 재품의 다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넓은 바다와 연어가 회귀하는 청정한 강이 있고 싱그런 바람이 불고 송이향 그윽한 햇볕 잘 드는 고향 양양에 하고 싶은 말씀은.
△양양은 인구가 적어 인적자원이 부족하고 교통 불편과 물적자원의 부족으로 기업 유치가 어렵다. 그러니 주 사업인 농수산업에 관광을 접목했으면 한다. 관광인프라를 개발하고 주민들은 관광객 유치에 힘써야 한다. 양양사람들은 정도 많고 마음이 따뜻하지만 천성이 무뚝뚝하다. 그래서 관광객은 주민들이 정이 없고 무관심할 뿐 아니라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생각한다. 양양은 관광지라 고객에게 친절히 대하고 상냥한 말투를 사용하며 정 많고 따뜻한 속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숙박시설이나 식당 가게 등에서는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올려받아 고객(관광객)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순간이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다면 수익도 많아져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고향에 대한 외부인의 이미지도 좋아지며 밝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항상 애정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후배들에게 부탁할 말씀은.
△후배들이 워낙 잘하니 딱히 부탁할 말은 없지만 ‘나를 위하는 것이 지역을 위하는 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각자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후 지역과 주변을 살피며 서로 돕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덕을 쌓으면 대를 잇는다는 얘기가 있다. 오늘 내가 덕을 베풀면 내가 그 은혜를 입지 못하더라도 다음 대에서는 은혜를 받는다.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은 쉽지 않다. 노 회장의 인생관이나 철학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며 여건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 꾸준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 세상 살며 남에게 속고 가슴 아팠으나 이를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노력하며 살고자 한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숙제하듯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제 남은 인생을 아내와 고향에서 지인들과 함께 축제처럼 살고 싶다.
-노후를 제2의 인생이라 한다. 퇴임 후 본인을 위해 축제하듯 살고 싶다고 했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양양은 연어가 지역의 상징이다. 그래서 출향인사들 모임 중에 연어회가 있다. 나도 60대 중반이 넘다 보니 70세부터 제2막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연어회에 가입했다. 그동안 동호회 활동으로 활발하게 해 오던 취미를 귀향하여 지역 주민들과 함께 고향에서 건강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회사는 정상화하여 직원들이 어려움 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체계화할 것이며 재정기반을 마련한 후 능력 있는 임원에게 물려주려 한다.
-청소년시절에 아버지한테서 서운함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도 가정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자녀들을 키우며 많은 경제적 비용이 필요했을 텐데 크고 작게 사회에 기부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생각은.
△불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결정한 것에 묵묵히 따라주고 올바르게 자라준 자식들과 부인에게 감사한다. 자식들도 부모를 보고 배웠으리라 생각하며 대를 이은 기부와 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을 기다리며 살아온 인생
한파와 폭설의 겨울을 거치지 않고 어찌 꽃피고 새가 우는 봄이 오겠는가. 인생은 많은 아픔을 양분 삼아 아름답고 멋지게 자란다. 청소년 시기 교통사고로 모친을 잃고 괴로워했음에도 밝은 표정이었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기보다는 학생들과 보육원을 찾아 기부와 돌봄을 우선했다니 얼마나 서운했을지 짐작이 간다. 밖으로만 봉사하는 냉혹한 부친을 보고 연민을 느꼈으며 미워하면서도 봉사를 배웠을 것이다.
노 회장은 많은 사랑을 받고 어리광을 부리며 정서를 키워야 할 때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의 돌봄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항상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과 굶주린 사랑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사업이 바쁘면서도 재경 양양군민 회장을 맡아 다방면에서 봉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노 회장에게서 양양의 상징인 송이향이 나는 것 같다. 성인이 되고 기업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동생 같고 자식 같은 후배들을 돕기 시작했다.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며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봉사는 이렇게 부전자전이 되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후배들은 노회장의 간곡한 마음을 깨닫고 이에 부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승수 설악신문 서울 주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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