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201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지휘자와 관련된, 좋지 않은 일로 여론이 들끓었다.
정명훈은 원래 피아니스트였다. 40 여 년 전, 내가 고등학생이던 1974년에 정명훈은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을 했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그 입상 소식은 국민들에게 한 줄기의 큰 빛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청년 정명훈은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나는 정명훈이 피아노를 치던 멋진 모습을 동네 구멍가게 흑백TV를 통해 보았었다. 연주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말 감동적이고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명훈은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작년 1월, 기자회견 때 정명훈이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음악밖에 몰라요!”
정명훈의 이러한 발언은 그의 모든 수준을 한꺼번에 드러낸 발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음악도 궁극적으로는 일종의 인문학이다. 따라서 음악가라면 음악 외에도 여러 가지 공부를 해야 한다. 문학이나 미술 작품도 감상해야 하고, 역사나 철학 서적도 읽어야 한다. 부조리한 사회 제도나 현상에 대해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우리의 분단 상황에 대해 고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단순 무식한 음악 기능인이 아닌, 큰 음악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명훈은 음악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무관심하고, 심지어 누구나 지켜야할 사회적 규범이나 관례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식의 발언과 행동을 했다.
실제로 정명훈은 악보 외에는 신문 한 장 읽지 않는다고 한다. 유일무이한 취미가 요리하기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지적을 할 것이 있다. 정명훈이 안다는 음악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인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클래식음악일 것이다.
클래식음악, 참 좋은 음악이다. 그러나 종족음악학적으로 보자면, 클래식음악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정명훈은 그런 클래식음악이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가장 예술적인, 음악의 전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자신은 그런 음악 전문가이므로 세계 최정상의 음악가라는 자부심과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정명훈의 음악 가치관은, 서세동점 시대에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오리엔탈리즘적인 음악 가치관이다. 물론 정명훈의 서구 편향적인 음악 가치관은 그의 개인적인 잘못만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명훈도 오리엔탈리즘 역사의 희생자라고 볼 수가 있다. 정명훈도 서양음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서양음악에 선택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명훈이 우리나라의 국위를 선양했다는 말에 30% 정도밖에 동의할 수가 없다. 그는 그저 서양의 좋은 클래식음악 작품들을 열심히 지휘했을 뿐이다. 덕분에 국위가 제대로 선양된 나라는 클래식음악의 본고장에 해당하는 유럽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명훈이 한국음악 작품 전문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더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서양음악의 전도사 정명훈은, 그 동안 서울시향 평단원 평균 보수의 100 배에 해당하는 고액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정말 적절한 보수일까? 더구나 그 보수가 서울시민들의 혈세인데….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떠나게 된 정명훈….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음악바보가 아닌,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음악팬들은 유명 음악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에서 좀 벗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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