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초반 우리나라 서점가에는 혜성과 같이 등장한 베스트셀러 한 권이 있었다. 책 제목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이 책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고루하고 일방적인 시각에서 저술된 역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바라보기와 비판적 사고 및 검증된 정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전문 역사서가 아니라 입문 단계의 저술이었기에 깊이 있는 전문서적이랄 순 없었어도 그 당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연결고리의 이해를 돕는, 재미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서적이었다. 이후 그 인기에 편승한 거꾸로 읽는 000, 혹은 거꾸로 보는 000 등 수많은 아류작이 출간되기도 했었다.
요즘에는 방송에서도 역사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종종 보게 된다. ‘벌거벗은 세계사’ 혹은 ‘벌거벗은 한국사’ 등의 제목을 단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면면들을 파헤쳐서인지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보통의 교양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에 금방 폐지되곤 했었는데, 꽤 오랜 기간 폐지되지 않고 방영되는 것을 보니 교양에 오락성을 가미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의 편향성 중의 하나는 문과 이과의 불균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의 이과 편중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문과를 공부해서는 소위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한다. 오죽하면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 또는 ‘이부심(이과의 자부심)’ 등등의 신조어들이 등장할까. 문과 중에서도 특히 경영, 경제, 행정, 법 등의 실용학문 분야를 제외한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 등의 인문학을 공부해서는 더더욱 향후 진로가 암담하게 느껴지는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
한동안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붐이 일기도 했었다. 실제 우리 삶에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공부는 아니기에 오히려 역설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죽하면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했을까. 그 중에서도 사학 분야는 좀 더 눈여겨 봐야할 분야이다. 과거를 고찰하는 데에만 한정되지 않고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상반된 다양한 견해가 있어 쉽게 다루기가 어려웠던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한 장면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1980년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고 신군부가 등장했던 급박했던 시절을 서사한 <서울의 봄>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건국전쟁>이 그것이다. 심지어 <서울의 봄>은 누적 관객 수가 천만 이상을 돌파할 만큼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재미와 의미를 다 갖춘 영화이기에 이런 흥행이 반갑기도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또는 ‘이 사안은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라는 말들이 많이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역사를 보는 우리의 안목을 키우고 넓혀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돌고 돌며 흥망성쇠가 이어져 왔지만 영광의 역사이든 치욕의 역사이든 거꾸로 들여다보고 벌거벗겨 보는 우리의 자세와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든 세계사든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 한 장면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들로 인해 역사가 소용돌이쳐졌지만, 한 번쯤은 표면만 보지 말고 그 내면에 내포되어 있는 실체들을 살펴보려고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 정치 분야에서 자주 나오는 말인 역사의 심판에 맡긴다는 말은 실제로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는 대다수 민중인 우리가 얼마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판단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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