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필승탑과 관음바위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본다. 필승탑은 양양 현산공원에 있으며, 관음바위는 속초 영랑호 보광사 뒷산에 있다. 서로 다른 장소에 새겨져 있는 각자(刻字)는 누구의 글씨이고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가?
<양양지방의 금석문>(양양문화원,2014)에 필승탑을 “한국전쟁 당시 제1군단 부군단장과 제29사단장을 역임하였고 ‘태권도’ 정식명칭을 만든 최홍희 장군이 북진통일을 기약하고 통일의 신념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직접 쓴 ‘必勝’을 가로 2.4m, 두께 0.5m, 높이 5m의 4단 기석에 새겨놓은 탑이다. 현재 양양 현산공원에 보존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속초의 금석문>(속초문화원, 2010)에 관음각자를 “속초시 영랑호 동남쪽 속초의료원 뒷편 산봉우리에 관음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에 ‘觀音’이라는 큰 글자가 종서로 새겨져 있다. 글자의 크기는 지름이 약 80㎝ 정도이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1줄에 4자씩 2줄, 종서로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지금은 잘 알아볼 수 없다. 그 왼편에도 역시 작은 글자가 종서로 ‘西歷 一九五二年 六月 日/ 李亨根 題/崔泓熙 書’라고 3줄 새겨져 있어 수복 직후 이 고장에 군정이 실시되고 있을 때 제1군단장 이형근 장군과 명필 최홍희 장군에 의해서 각자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필승탑과 관음바위는 이형근과 최홍희가 관련이 있다. 이형근 장군은 제1군단장(중장)으로 1952년 2월 양양군 군정사령관에 부임, 1954년 2월까지 재임했다. 양양군정은 1951년 8월부터 1954년 11월까지 3년 4개월간 실시되었다. 한편 최홍희 장군은 제1군단 참모장(준장)으로 1951년 3월에 취임, 1952년 6월까지 재임했고, 1953년 1월 부군단장이 되었다.
관음각자를 새긴 1952년 6월은 6.25전쟁 중이었다. 육군장교 군번 1번 이형근 군단장은 32세, 최홍희 참모장은 34세였지만 군대는 계급이다. 명필 최홍희 참모장 관음글씨에 이형근 군단장이 제목을 붙인 합작품인 것이다. 전란 중에 평화를 기원하는 전우애 캄레드(comrade)가 합쳐진 것이다. 참고로 이형근 장군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최홍희 장군의 명필은 필승탑의 ‘必勝’에서도 뛰어나다. 그런데 필승탑에서 최홍희 장군의 흔적은 ‘익크부대(部隊) 진군(進軍)’ 글씨가 전부이다. 1955년 그가 필승탑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창헌 최홍희서(蒼軒 崔泓熙書)각자가 있었다. 최홍희 장군이 1953년에 창설한 제29보병사단 별칭이 ‘익크부대’이다. 최홍희 회고록 ‘태권도와 나’(2005)에서 29사단을 ‘익크부대’로 한 것에 대해 “신익희 선생을 존경해서 신익희의 ‘익희’ 두 자를 연상한 것이며, 주먹은 9자를 의미하는 동시에 내 주먹으로 38선을 때려 부수겠다는 데 그 진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태권도 명칭은 1955년 4월 11일 이승만 대통령이 ‘태권도 우남(跆拳道 雩南)’ 휘호하사로 공식 탄생되었다. 최홍희 저 첫 번째 ‘태권도교본’(1949)에 친필휘호가 실렸으나 이후 사라졌고, 휘호하사에 대한 진위논란이 최근까지 계속되었다. 태권도의 창시자 최홍희 장군은 1959년에 대한태권도협회, 1966년에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불화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 1980년부터 수차례 방북, 김일성 부자를 만나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고, 2002년 북한에서 사망, 평양 혁명열사릉에 안장되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금석문에서 최홍희 이름이 지워졌다. 6.25전쟁 중 이형근 장군을 도와 우리지역의 수복재건에 힘쓰며 관음바위에 평화기원 각자를 새기고 필승(必勝)탑을 세운 최홍희 장군, 그의 저서 1959년 성화문화사 출판 ‘태권도교본’의 우리의 맹세에는 “1.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2.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3.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는 문구가 들어있다. 그랬던 그가 월북하여 평양 혁명열사릉에 묻혔고, 현산공원에 6.25희생자 충혼탑과 최홍희의 필승탑이 한자리에서 마주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철재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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