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값 / 송경동
‘집값’이 아닌 ‘집’이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학벌’이 아닌 ‘상식’이 소중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드높은 ‘명예’보다 드러나지 않는 ‘평범’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소수의 풍요’보다 ‘다수의 행복’을 우선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독점과 지배’보다 ‘공유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 앞에 경배하는 새로운 인간종이 되게 하소서
갑진년 새해가 훌쩍 한 달이 지나갔다. 새로운 달력을 펼치며 올 한해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은 다이어리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그리고 지나간 해의 다이어리 첫 쪽을 펼쳐 비교해본다. 해야 할 일들은 거의 붉은색으로 줄이 그어졌는데,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은 지워진 것이 거의 없다. 아직도 게으르고 자기관리가 안된다는 뜻이리라.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 일일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올 시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하는 통과의례다. 비록 지워진 목록보다 지우지 못한 목록이 많더라도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송경동 시인의 ‘사람값’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해 드리는 기도문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들어가면 자신의 다짐이기도 하다. ‘사람값’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가치나 구실’이다.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시인은 ‘집값’, ‘학벌’, ‘명예’보다 ‘집’, ‘상식’, ‘평범‘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자고 다짐한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곁에 많아지면 ‘소수의 풍요’보다 ‘다수의 행복’이, ‘독점과 지배’보다 ‘공유와 사랑’이 많아지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 즉 ‘내’가 아닌 내 주변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무릇 기도나 희망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우리 사회가 본질보다 부가가치를 더 추구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집이 주거가 목적이 아니라 재산증식과 일확천금의 기회로 변질한 ‘집값’ 때문에 대한민국은 아직도 주택문제에서는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가진 본연의 성향이나 인격보다 출신 대학과 출신 지역이 우선하는 지연과 학연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힘이 더 세다. 아직도 ‘국민을 위하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실행되는 대부분의 정책은 없는 서민의 편이 아니라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이 주려고 하는 꼼수를 숨기고 있는 일이 허다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정부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용되는 말이었고, 필자는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국민만 바라보는 따뜻한 정부’라는 슬로건 밑에서 일하는 이들의 눈길이 오로지 위와 그 옆을 쳐다본다고 느꼈지, 국민을 향한다는 느낌은 젊은 친구들의 표현대로 ‘일도 없었다’.
길은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뒤따라간 수많은 발자국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정치인은 ‘정치인값’을 하고, 재벌은 ‘재벌값’을 하고 오피니언리더들은 ‘리더값’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저절로 ‘사람값’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종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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