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문(설악신문 2023년 8월14일자) ‘막장드라마1’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석탄광산의 막장은 실로 다양한 현장이다. 이번에는 당시 광부였던 필자 나름의 경험으로 광산 지하 막장환경을 그대로 회상한다.
광부는 근무시간이 되면 복장을 갖추고 작업도구(삽·곡괭이·지렛대 등)를 챙겨서 조별로 배터리 광차를 타고 입항 후 다시 전기리프트(작업용으로 얼기설기 만든 엘리베이터)로 지하 1Km를 하강 직진으로 내려가다 보면 덜커덩쿵! 하고 선다. 이곳이 일제 강점기 때 파먹은 제1갱도이다. 다시 지그재그로 15~16m 광차로 개미굴처럼 진입한 끝에서 석탄을 캔다. 이 지점이 바로 지하막장이다. 지하 갱까지가 7Km이며 1시간이 소요된다. 작업을 마치고 나올 때도 1시간여가 소요된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감기에 걸리기 쉽다. 왜냐하면 리프트가 얼기설기되어 있어 내려갈 때 휙하고 찬바람을 맞고 내려가다가 갑자기 후끈하고 더운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곳부터는 탄층 즉 석탄층으로 1억5천만년전부터 타고 있는 곳이다. 산화되고 있기 때문에 막장의 열이 32도 이상이다. 밖에서 파이프로 공기를 넣어도 32도 이상의 고열에 광부들은 목도리(작업 중 탄가루가 몸에 들어가지 못하게)를 두르고 또 군대 가스훈련 때 사용하는 특수마스크 같은 장비로 온몸을 다 감싸고 일하면 더위는 그 이상이다.
아, 지금도 깊은 밤 그때의 지하갱도 막장 모습은 떠올리기조차 싫은 나의 여러가지 트라우마(trauma) 중 하나다.
당시 석탄 광부로 밤 12시 병반 근무를 마치고 날이 훤하게 동이 튼 갱도항 밖 입구에 나와 상쾌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보면 정말 죽었다 다시 살아온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8시간 이상 지하 7km의 갱도에서 비오듯이 땀을 쏟고 석탄분진 때문에 호흡하기도 어려운 피곤하고 힘든 시간을 마치고 밖의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을 맞으니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기분에 짧은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필자는 당시 광부로 일하면서 제일 부러웠던 사람은 회사 사장도 아니요 상가에서 큰 장사를 하는 사장님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광업소 회사 내 수천평 되는 넓은 토지에는 탄광항내에서 쓰이는 동발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굴진작업에 사용할 나무를 제조하는 대형 제재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70세 가까운 목수노인과 노인을 보조하는 젊은 청년이 2명 1조로 광산휴무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는데, 사망한 시신을 모시는 관(官)을 짜는 게 거의 하루일과다. 한밤중 어두운 비오는 밤 12시 병반근무를 위해 광산 회사에 도착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대낮같이 밝혀주는 서치라이트 불빛이 비추는 제재소 긴 처마 밑에 오랫동안 목수가 만든 관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서 나의 불행한 인생을 원망하며 포기할 뻔한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관사(회사에서 제공한 수십명의 광부들을 입주시킨 토끼장 같은 숙소) 내 거처에 선반을 하나 만들기 위해 담배 몇 갑을 사주고 송판을 얻은 인연으로 오전에 출근할 때면 그 목수와 서로 인사를 한다. 그럴 때면 목수노인은 나에게 심한 농담을 한다. 어이! 연씨! 나중에 필요하면 제일 좋은 관으로 골라줄게! 하면서 나에게는 악담(惡談)같은 농담을 할 때는 싸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광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면모를 보면 인간성이 험악하고 상대못할 사람도 있던 시절이었다. 반면 오랜 경험과 수십년 광부생활을 한 노장의 광부들은 “어이 정목수! 내관은 이쁘게 잘 짜놓게” 하면서 육두문자로 농담도 한다.
당시 광부들은 공기 좋은 외곽(外廓) 즉 갱도 굴속 말고 밖에서 일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였다.얼마나 탄광굴속의 공기가 나빠 숨쉬기가 어려웠던가! 광산에서 관을 만드는 곳이 당시에도 광부들에게 혐오시설이라 해서 내가 광부를 퇴직한 후에는 폐쇄되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사)석탄산업전사 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가 사진전을 통해 잊혀져가는 근대 산업화 시기에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시발점이 된 석탄산업과 탄광의 역사를 기념하고 탄광을 모르는 현 세대가 석탄 광부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드는 등 그나마 맥(脈)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기고는 지난(설악신문 2023년 8월 14일자) ‘막장드라마1’ 기고문에 대해 많은 분이 격려하며 막장갱도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용기를 내어 썼습니다(필자).
연승원
속초농협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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