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필자가 대기업 신입사원이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 세상 물정 모르던 그 때. 입사 후 보게 되는 직장상사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고 적응이 안 됐었다. 저마다 그 위 인사권자를 향해 아부하는 모습들이 보기가 싫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한해 두해 직장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그들을 보면 ‘아~아부도 참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아부를 잘하려면 아부하는 대상의 기호와 선호도, 가려운 곳들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 적절한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함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긴 하지만 칭찬도 아부와 다르지 않다. 칭찬을 잘하려고 하면 칭찬해 주려고 하는 대상의 특출한 장점, 뛰어난 성과, 외모, 옷차림 등등 그를 잘 파악하고 관찰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부와 칭찬은 그 대상을 통한 대가를 기대하면서 하는가 아닌가의 여부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질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칭찬에 익숙하지 않다. 일단 본인이 느끼기에 과한 칭찬을 받게 되면 어색해 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칭찬을 잘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고, 눈앞에서 본인에게 칭찬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1984년에 상영되었던 성인영화 <무릎과 무릎사이>를 기억하시는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 야할 것도 없는 영화지만 제목에서 비롯된 야릇한 상상으로 인해 꽤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영화보다도 더 흥행(?)에 성공했던 유머가 있었다. 이른바 ‘무릎과 무릎 사이에는 뭐가 있을까?’ 정답은 ‘과’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정답은 ‘과’였다.
아재개그를 다시 시전하자면 사실 아부와 칭찬 사이에 있는 것도 ‘와’일 뿐이다. 하지만 백지장 한 장 정도의 차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없는 칭찬과 그렇지 않은 아부는 그 결과가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인생을 훌륭하게 뒤바꿔 놓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눈앞의 달콤한 아부에 속아 그릇된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를 왕왕 봐 왔으니 말이다.
새해 들어 새롭게 각오하고 마음먹은 일들과 여러 계획이 있지만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아내와의 ‘1일 1칭찬하기’ 이다.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왔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있을 수 있겠으며, 하물며 서로에게 칭찬할 일은 뭐가 그리 많겠는가? 게다가 매일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칭찬하기라니….
하지만 막상 칭찬 챌린지를 시작하고 보니, 아내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하게 되고 상대방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둥지를 떠난 아들이 없는 적적한 저녁시간이면 우리 부부의 칭찬 챌린지가 시작된다.
‘당신은 목소리가 안정감 있고 끈기 있게 일을 잘 해내’ ‘당신은 날 잘 배려해주고 은근한 뒷받침을 잘 해줘’ 등으로 시작된 1일 1칭찬 챌린지.
그러나 이내 밑천이 떨어진다. 어느 날엔가 아내가 칭찬을 한다.
‘당신은 남자지만 설거지를 참 깨끗하게 잘해~’ 앗, 이 칭찬은 불과 며칠 전에도 했었다며 무효라고 내가 툴툴거리며 웃는다. 아내도 따라 웃는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부부를 웃게 하는 것 같긴 하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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