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백두대간> 표지.
공저에 참여한 박경이 작가.
글로벌 여성 전문산악인으로 설악권에서 활동 중인 박경이 전 을지대 교수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간한 백두대간 교육론 <우리가 몰랐던 백두대간>(도트북, 2만3,000원) 공저에 참여해 화제다.
산림청 국립산악박물관장을 역임한 박 전 교수는 서울교대 산악회 선배인 김광선(76학번)ㆍ김우선(77학번)ㆍ 신인수(78학번) 씨, 후배인 차성욱(00학번) 씨와 함께 오랜 세월 오르내린 백두대간을 사실적으로 공동 집필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백두대간 교육론으로 집대성한 <우리가 몰랐던 백두대간>은 도입부부터 재미난 물음으로 시작된다. “그럼 여태껏 백두대간 교육을 하지 않았단 말?” 표지에 실린 글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장을 하나씩 펼쳐나가면서 그 궁금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조선시대에 백두대간으로 통했던 한 나라의 지리 체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한 민족이나 사회의 무관심, 또는 집단 기억상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책자로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70여년간 잊혀졌다가 되찾은 백두대간’이라는 말의 허구를 필자들은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게 결코 자발적으로 잊은 것이 아니라 식민통치기구에 의한 금지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러면서 들이댄 1910년 11월 19일자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금지되고 몰수당한 지리, 역사, 국어 교과서 목록이 빼곡히 들어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특히, 백두산을 조종산으로 해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개념으로 우리나라 전체 지세 및 각 도의 산과 지리를 기술한 교과서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지질학적 개념에 기초한 산맥 중심의 교과서로 바뀌게 된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냥 잊혀진 거라고 말하기에는 그간 우리의 역사와 지리에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관심했다는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진다고 저자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본다.
이 책은 많은 페이지에 걸쳐서 백두대간에 관한 새로운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엄홍길(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대장은 추천의 글에서 “드디어 백두대간 국민교과서가 나왔습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DMZ 평화의 길을 걸으며, 갈 수 없는 북녘의 백두대간을 그리워했습니다. 풍부한 교육 현장의 경험을 살린 이 책의 출간과 더불어 남북한 청소년들이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을 이어갈 그날을 소망합니다”라고 기원했다.
다양한 시도ㆍ디테일 돋보여
제1장 창의적인 백두대간 교육을 위한 제안에서는 현장 경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다양한 시도와 디테일을 들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일기예보나 산불 뉴스, 백두대간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나 고속철의 터널, Chat GPT의 백두대간 지식, 반달곰 오삼이의 백두대간 종주 뉴스 등을 통해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백두대간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과정과 풀이는 딱딱하지 않아서 좋을 뿐 아니라 흥미롭기조차 하다.
책날개에 펼쳐놓은 글은 이 책의 전편에 흐르는 기획 의도 및 조곤조곤 일러주는 듯한 설명과 딱 맞아떨어진다.
제2장 쉽게 풀어 쓴 산경표와 백두대간은 여태껏 알려진 신경표 필사본 19종을 예로 들면서 백두대간을 풀이하고 있어서 딱딱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에 걸쳐서 산경표 필사본이 19종 있으며, 스무번째 산경표가 북한에 있다는 소식 등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한문 책, 산의 족보 ‘산경표’가 독자들에게 전혀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국립산악박물관 소장 필사본 산경표가 발굴되어 한국고전적종합목록에 등재되는 과정은 우리 주변 어느 곳이든 귀중한 문헌이 방치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여암 신경준의 수고 진본 산경표가 어느 날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꿈 또한 소중하게 다가온다. TV 방송으로도 나간 바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담 프로그램 첫부분의 청와대 본관 금수강산도를 두고 쓴 글 ‘대통령도 손석희도 몰랐던 백두대간’(106쪽)은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백두대간의 허와 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대 뛰어넘는 백두대간 고찰
제3장 백두대간의 현대적 의미는 필자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다. 산경표 백두대간이 인문지리학이라는 학문 연구 대상을 뛰어넘어서 실제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백두대간은 18세기 조선시대 사람들의 자연인식체계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는 주장과 설명이 3장 전편의 글을 통해서 드러나 있다.
‘핵실험으로 오염된 북한의 장백정간 만탑산’(160쪽), ‘호남정맥이 가른 동편제와 서편제’(183쪽), ‘경인아라뱃길에 동강난 한남정맥’(187쪽) 등의 글에서는 백두대간이 우리 현실과 밀접하게 닿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대통령의 백두대간법 시행령’(180쪽)과 같은 글은 향후 세계복합문화유산에 백두대간을 등재하려면 그와같은 시행령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제4장은 2년여에 걸친 국립등산학교의 시범교육 프로그램 ‘백두대간탐험대’가 바탕이 된 백두대간 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보고서 성격을 띈다. 특히 국립등산학교 교육운영실장을 맡았던 박경이씨의 뚝심과 엄홍길 명예교장의 지원으로 밀어부쳤던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 사태 이후 여러 명의 교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까맣게 잊혀진 상태이다.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한 백두대간 워크북이 고스란히 등산학교 창고에 쌓여있다는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것이 당시 참여했던 국립등산학교 백두대간 강사들의 토로이기도 하다.
서울교대 산악회 선후배들
여섯 명 저자들의 면면을 살피면 지도 제작을 맡은 이문희 씨를 제외하고 다섯 명의 필자들은 모두 서울교대 동문으로 재학 시절부터 서울교대산악회인 ‘산퍼’에서 활동해온 산악인들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맏형 격인 김광선 씨는 박경이 전 교수와 함께 1991년 히말라야 아마다블람과 2004년 남미 와스카랑 원정대원으로 등반한 적이 있다. 특히 박 전 교수는 1997년 가셔브룸2봉, 2001년 아콩카구아, 2002년 쵸피칼키 등을 오른 여성 산악인이기도 하다. 막내인 차성욱(45세, 서울 백운초교 교사) 씨는 2002년 6월부터 8월까지 40박 41일에 걸쳐서 백두대간 단독종주를 해낸 경력이 있다. 평소 어린이들의 독서와 글쓰기 지도에 자신의 백두대간 종주일기를 공유함으로써 거둔 뛰어난 수업 효과를 이번 책의 저술에도 십분 활용했다.
“산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게 백두대간 마루금이든 암벽등반이든 간에 나이를 뛰어넘어서 서로 평등해진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30년 가까운 연령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배들과 공저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을 묻자 차 씨는 서슴없이 함께 해왔던 산악 경험을 그 바탕으로 들었다.
설악산을 사랑하는 산악인
지난 1991년 국내 여성 최초로 동계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성공하며 산악역사의 한 획을 그은 박경이 전 교수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2013년까지 24년을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세계적 등산가 말로리 ‘산이 저기 있기에 오른다’는 말처럼, 산이 좋아 등산을 시작한 박 전 교수는 1985년 서울교대 산악부를 시작으로 30년 이상을 암벽, 빙벽, 산악스키, 해외고산등반 등 전문산악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러 개의 국내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고 있다. 대학 4학년 때인 1988년에는 한국대학산악연맹 부회장을 맡아 국내 최초로 백두대간 종주를 기획해 우리나라 산악역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히말라야 8천m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롬2봉(8,035m)과 안데스, 알프스 등 세계적인 고봉을 등정한 극소수의 여성 등반가로 잘 알려져 있다. 또 아시아 최초로 산악스키 국제심판자격증을 취득했고, 여성 최초로 산악스키 실업팀 감독이자 세계선수권대회 한국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산악전문지 ‘사람과 산’ 편집장을 맡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엮어내기도 했으며,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라는 고산 등반 에세이를 펴내 화제를 모았었고, EBS가 마련한 ‘내가 히말라야에 오르는 이유’ 초대석에 출연해 정관용 교수와 산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소탈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또 산림청 국립산악박물관장을 맡을 당시에는 ‘백두대간에 살어리랏다’를 주제로 조선시대 지리서 ‘산경표’ 등을 선보이는 특별기획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현재도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 때론 해외 산악활동 중인 박경이 전 교수는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설악산과 동해를 감상할 수 있는 삶이 정말 감사하고, 이번 백두대간 교육론이 설악권 학생들은 물론 우리가 미처 몰랐던 백두대간을 통해 더 많은 역사와 겸허한 삶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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