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교육도서관 옆 언덕 위에 작은 집 한 채에 불이 켜져 있었다. 주변에 눈에 띄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지만 창문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따스한 기운에 ‘메를로커피’임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커피향과 함께 김천서 ‘메를로커피’ 대표가 반갑게 맞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 커피를 볶았다며 건조 중인 신선한 커피콩들을 보여주었다. 작년 11월 25일에 오픈했지만 커피와 함께 한 지는 17년이 되었다는 김 대표는 커피를 내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커피를 마실 때는 세 번을 나누어서 마시라고 합니다. 처음 가장 뜨거울 때는 향이 짙을 때이고, 그다음 60도쯤 따뜻할 때는 향과 맛이 잘 어우러졌을 때죠. 그리고 한 35도에서 40도로 미지근할 때는 맛이 많이 농축돼 있어요. 그러니까 한잔의 커피로도 세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는 거죠.”
“핸드드립만큼 건강한 커피 없어”
김 대표가 커피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경동대 외식사업경영학과장으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먼저 커피를 배우기로 했다. 18주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강릉의 커피 명장인 박이추 선생에게 찾아가 커피에 대해 배웠다. 공부하다 보니 그동안 자신이 커피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커피를 아주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예요. 커피를 마시면 무조건 속이 쓰리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건강하게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김 대표는 커피와 건강은 크게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커피는 둔해져 있는 세포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살살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암세포가 자라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보관한 지 오래된 커피는 불포화 지방이 산패되면서 발암물질이 될 수 있어 가능한 20일을 넘기지 않은 원두커피를 마시는 게 신선하고 맛도 좋다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유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핸드드립만큼 건강한 커피가 없어요. 종이필터가 나쁜 맛, 불순물 등등 안 좋은 것은 다 걸러내거든요. 전문점에 있는 커피머신의 필터도 페이퍼가 아닌 철이어서 안 좋은 기름이 있다면 걸러내질 못해요. 조금 번거롭지만 최대한 핸드드립으로 먹는 것을 권장하죠.”
교수직 퇴임 후 차린 그의 공간은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내려준 핸드드립 커피 맛에 반해 ‘메를로커피’를 다시 찾는 이들은 ‘그때 먹었던 코스타리카 커피 오늘도 줄 수 있는지’ 부탁하곤 한다. 그러면 김 대표는 ‘커피는 줄 수 있지만 그때 그 커피는 지금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두가 숙성되면 매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향은 탄산가스와 함께 자꾸 도망가고 맛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숙성해요. 그러니까 향은 점점 내려오고 매일매일 맛은 올라가죠. 7일쯤 되어야 맛과 향이 가장 균형을 이룬다 그래요. ‘나는 향이 더 좋아’하면 3일에서 5일쯤에 먹는 거고, 숙성된 맛이 좋으면 10일에서 15일 사이에 먹는 거죠.”
그래서 김 대표는 이 세상에 똑같은 커피는 한 잔도 없다고 했다. 그때 마셨던 커피는 그날의 감동으로 마음속에 쟁여두고 오늘 마시는 커피는 또 새로운 커피로서 감동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꼈으면 한다는 말에 커피와 사람을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매일 다채로운 커피 맛과 향 선보여”
가게 이름을 ‘메를로커피’로 지은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와인에도 식견이 깊은 그는 ‘메를로’가 원래 와인 품종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은 메를로는 바디감이 좋다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목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은 달다고 한다. 그런 메를로처럼 바디감이 좋고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좋은 커피를 추구하면서 가게 이름을 붙였다.
그는 손님들에게 콩을 판매하면서 핸드드립으로 마시는 팁이 적힌 쪽지를 함께 넣어 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맛과 건강 모두 챙기며 커피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작은 공간에 모인 손님들에게 핸드드립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좋은 커피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17년을 가까이 해도 여전히 커피가 어렵지만, 어렵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는 2~3일에 한 번씩 콩을 볶을 때마다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웃어 보였다.
“사람들에게 커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내가 볶은 커피, 내가 내려주는 커피에 대해 즐기고 좋은 기운 받고 가면 전 그게 좋아요. 저의 공간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건강한 커피를 보급하면서도 매일 다채로운 커피의 맛과 향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한편, 메를로커피는 낮 12시에 열어 오후 5시 30분에 닫으며, 매주 일·월요일은 휴무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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