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80년대 초에 경기도 가평에서 군 복무를 했다. 당시 필자가 복무하던 부대는 전방부대처럼 경계근무보다는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을 많이 하던 부대였다. 각종 훈련 중 유격 훈련도 힘들었지만, 필자에게 가장 힘든 훈련은 지구력이 있어야 하는 행군이였다. 2박 3일 100킬로미터 행군을 하고 나면 발바닥엔 대부분 물집이 생기고 아킬레스건염이 생겨서 일주일 정도는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들이 많았다. 특히 산악행군을 했을 때보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을 행군했을 때 더욱 심했다. 일반적인 생각으론 산악행군이 힘들 것 같은데, 편하게 잘 포장된 길이 왜 더 힘들까?
우리는 일상이 반복되거나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싫증도 나고 스트레스도 받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가 쌓이게 된다. 그래서 휴가도 가고 여행도 다니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소위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푼다. 우리 몸의 근육도 마찬가지이다. 행군하는 길의 여건에 따라 근육의 피로도를 생각해 보면 산악행군보다 잘 포장된 길이 왜 힘든지 알 수 있다.
잘 포장된 길을 장시간 걷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일상 똑같은 작업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 즉 환경이 일정하게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은, 발과 눈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가 발걸음마다 같을 것이고, 얻어진 정보에 따라 머리에서 내려지는 수행 명령도 항상 일정할 것이다. 수행 명령이 일정하면 명령을 수행하는 근육도 특정한 근육만 사용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특정 근육의 피로도가 높아질 것이다. 다양한 지면에 발을 딛고 걸었던 산악행군은 다양한 근육들을 사용함으로써 근육의 피로도 분산되었으니 산악행군이 편했다.
현대인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여러 운동을 한다. 특히 걷기운동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누구나 접근하기 쉽다. 요즘 우리 속초시민들을 보면 맨발 걷기, 바닷가 모래사장 걷기, 노르딕 걷기 등 다양한 걷기운동을 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건강하게 운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필자도 영랑호반길 산책을 자주 한다. 우리 속초는 아름다운 영랑호반길이 있어 속초시민들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단지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산책길이 우레탄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걷기 편하게 우레탄으로 잘 포장된 도로가 걷기 불편한 도로가 된 모순이 생긴 것이다. 비가와도 질척이지 않아서 걷기가 편해졌는데, 장시간 반복적으로 걷다 보면 종아리 근육도 뭉치고 발바닥과 발목도 때론 불편해진다. 물론 하루 이틀 걸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산책하다 보면 매일 걷고 달리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종아리 근육 발바닥 근육들의 피로가 쌓여 종아리 근육통, 족저근막염, 아킬레스 힘줄염, 심하면 관절질환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사람은 아프고, 어떤 사람은 괜찮은 이유는 왜 그럴까?
그것은 그 사람의 건강상태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한의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기가 허하면 기의 순환능력이 떨어진다. 혈이 허하거나 어혈이 많으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된다, 또 습담이 많아서 기와 혈의 흐름이 잘 안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근육의 피로회복이 늦어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오장육부의 기능 및 외부의 영향 등 다양한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치료는 어떨까?
한의학에서 치료는 개인마다 다 다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종아리 근육통,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 등 증상과 병명은 같지만 발생한 원인이 모두 다르기에 치료의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증상의 발생원인을 잘 변별하여 침 치료와 한약 처방을 달리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창덕궁을 산책하는 호사를 누릴 기회가 있었다. 인정전 낙선재 후원 등을 돌아보며 ‘걷기에 참 좋은 건강한 길이다!’라고 느꼈다. 꽤 장시간을 걸었어도 다리에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인정전 마당의 돌길 낙선재의 포장되지 않은 흙길 그리고 후원의 자연스러운 길 때문이었다. 아주 건강한 길이었다. 우리 한의학은 이런 자연스러운 길, 건강한 길에 닿아있다. 잘 포장된 길보다 조금 불편하고 늦지만, 여유를 갖고 이런 자연스러운 길, 건강한 길을 걷기를 권해 본다.
김성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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