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사과나 용서나 이해를 구해야 할 일에도 끝내 철면피가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해서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소원해주고 종내에는 단절하게 된다. 이런 불행을 막으려면 잘 잘못만 막무가내로 따질 생각 말고 매듭 푸는 슬기를 발휘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아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게 된다.
2024년 갑진년 새해다. 생각할 일도 많고 해결할 일도 밀려든다. 그렇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기대를 해 보지만 어림없다. 그렇지 않아도 해가 갈수록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이 길고 긴 겨울밤을 아무리 뒤척이고, 지혜를 짜봐야 머리만 더 지근거리게 한다.
갈수록 골치 아픈 일이 터지건만 자신의 아픔만 아픔으로 여길 뿐 남의 아픔은 아픔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공격에 아픔을 느꼈다면 자신의 공격에 누군가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속담에 이르기에 ‘제살이 아프면 남의 살도 아픈 줄 알아라’고 했다. 제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 알아야 하고(이 말을 뒤집으면 제 자식 귀한 줄 모르면 남의 자식 귀한 줄 모르는 거다), 제 삶이 중요한 줄 알면 남의 삶도 중요한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이 말도 뒤집어 보면 마찬가지다) 한데 왜 이토록 쉬운 우문현답을 잊어버리고 사는지 모르겠다.
‘제 버릇 개 줄까’라는 속담도 있다. 못된 인간을 보며 “무쇠니 두들겨 다시 만들 수도 없다”고 탄식만 했다. 버릇 고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건 데 정녕 성격이나 버릇을 고치겠다며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는 건지 알 듯 모를듯하다. 버릇 고치기는 입막음에서 시작되고 입막음을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는 여든 살로 향하고 있는데 책을 언제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지 이젠 물을 곳도 없다. 이 세상 아무리 복잡다단하고 고해(苦海)라고 해도, 구중 궁궐문도 빗장만 밀면 열 수 있는 건데 문제가 있으면 해답도 있어야 하건만 찾을 수 없다.
날이 밝았나 창밖을 봐야 칠흑이다. 통 트려면 어림없다. 억지라도 지난날을 자성해본다. 늙은이에게는 지혜란 게 있는 건데 허구한 날 해가 지고 달이 가도 똑같은 자책과 고뇌만 반복할 수는 없지 않는가. 제 버릇 개 주지 못하면 길바닥에 내던져 버리면 되련만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지난 한 해 가장 아쉬웠던 게 무엇이었는지 꼽아본다. 많을 것 같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니 손가락으로 헤아려진다. 그 중 뽑자면 소통이 아니었나 싶다. 3년 동안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 소통 단절이란 일생일대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했다. 얼굴은 잊혀지고 대화는 잃어갔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도 곧 맥이 풀리고 만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3년을 보냈다. 슬기롭다는 인간이 고작 코로나에 백기를 들고 끌려다니며 산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나 싶다. 인간사에 지을 수 없는 일대 크나큰 수치다.
마침 지난해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보고서>라는 책이 나왔다. 책은 85년 동안 1000여명의 사람을 추적 연구한 것으로 결론은 “좋은 관계야 말로 행복의 핵심요소”라고 한다. 1938년에 시작해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하버드 성인연구’는 가족, 직장, 정신, 육체적 건강, 삶에 대한 견해, 정치, 종교 등을 포괄했는데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 있는가 하면 돈이 많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라면서 그 답이 인간관계에 있다고 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대목은 노년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건 재산, 명예, 학벌, 심지어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건강도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는 것이다. 언뜻 가장 쉬운 행복에 대한 답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렵다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오늘도 헤매며 사는 줄 모르겠다.
장세호
전 속초시 지방행정 동우회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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