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상균 설악윈드오케스트라 단장.
설악윈드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습실에 모여 함께 연습하고 있다.
“윈드(wind)가 바람이잖아요. 호흡의 바람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악기를 취급하는 사람들이에요. 즉 저희는 관악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창단 10주년을 맞이한 ‘설악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해 묻자 함상균 단장은 이렇게 소개했다. 대부분 알고 있는 오케스트라는 현악기가 기초를 이루고 관악기, 타악기가 어우러진 그림이지만 관악기로 구성된 악단은 아무래도 가까이서 접하기 쉽지 않다. 속초의 유일한 관악단으로서 10년이 넘도록 명맥을 유지하는 ‘설악윈드오케스트라’의 이야기를 함 단장을 통해 들어보았다.
11가지 관악기·타악기…단원 30명 활동
“지역에서 관악기를 접하기가 쉽지 않죠. 저희 단원들 같은 경우에는 학교 다닐 때 관악부, 밴드부였거나 옛날 TV 자료에 나왔던 고적대 출신도 있어요. 색소폰 동호회에서 온 여러 사람으로 구성되어 이끌고 있어요.”
설악윈드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악기는 타악기까지 포함해 11가지 정도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있다고 한다.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호른, 유포니움, 튜바, 바순 등 음악 교과서에서만 봤던 관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지역민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 꾸준히 모여 연습하는 단원은 약 30명 정도. 팀파니, 실로폰, 마림바, 드럼 등 다양한 타악기도 함께 해 실제로 연습 장소를 방문했을 때 기대 이상의 웅장함에 온몸이 압도되는 것만 같았다.
함 단장은 관악기 같은 경우 ‘도레미파솔라시도’ 스케일을 배우는 데도 거의 1년 가까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렇게 배우기 쉽지 않은 관악기를 수십 명의 사람이 한데 모여 실력을 닦고 꾸준히 소리를 맞춰볼 수 있었던 데는 선후배 간의 품앗이와 대가 없는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저희가 10년 조금 넘게 하다 보니까 청소년 때부터 함께 했던 학생들 중에는 음대를 간 친구들이 있어요. 각지에서 대학을 다니며 유학을 가거나 서울에서 연주자 활동을 하기도 하죠. 공연 날에는 속초에 내려와 함께 연주하기도 하고 재능기부로 가르쳐주기도 해요.”
사실 함상균 단장은 함께 연주했던 젊은 후배들에게 지역에 재능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종종 언급한다고 한다. 함 단장이 40년 전 어렵던 시절 속초라는 작은 지역에서 음악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재능기부의 수혜자였기 때문이다.
“열일곱에 시작했으니까 거의 40년 했죠. 그 당시 동년배 중 호른 전공으로 대학을 가는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2년 선배 중 한 사람이 있긴 했지만 굉장히 열악했죠. 대학에 가니 강릉, 춘천, 원주에서 온 친구들은 많았지만 속초에서는 저 혼자였어요.”
오케스트라 해체되지 않고 오래 갔으면…
1985년 속초고등학교 밴드부로 활동할 당시 관악기를 전공한 고등학교 은사님의 가르침과 지지 덕분에 그 당시 쉽지 않은 음악의 길을 선택할 용기를 얻었다. 그 외에도 말할 수 없는 도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전공과는 다른 직장생활을 해야 했고, 오랜 시간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에 내려왔다. 그리고 속초고 밴드부 선후배, 양양고, 설악고 출신 등 설악권의 음악에 뜻이 있는 선후배들이 모여 10여 년 전 설악윈드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함 단장도 다시 악기를 잡게 됐다. 창단 이후 처음 연주회를 가졌을 때가 함 단장에게는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대학 재학 당시 홀로 속초 출신이라 견뎌야 했던 외로움과 자존심 상했던 마음들을 다음 세대는 겪지 않았으면 하기에 선후배끼리 서로 돕고 끌어주는 분위기를 쭉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 함 단장의 바람이다.
처음에는 연습실이 따로 없어 동광농고(현 동광산업과학고) 음악실 컨테이너에서 발기해 속초문화회관 지하에서 수년간 연습을 진행했다.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 퍼내기도 하고, 곰팡이도 잘 슬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지역 단체장들의 배려 덕분에 주유소 건물에서 식당까지 자리를 옮겨다니며 연습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재 식당 공간을 내어준 사장님도 ‘영리 목적이 아닌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한 봉사 차원으로 활동하는 것이니 여기 와서 연습하라’고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줬다고 한다.
과거에는 설악권 출신의 선후배가 모여 결성했지만,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속초로 이주해온 단원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군악대에서 트럼본을 불었다며 함께 하고 싶다는 지원자가 들어왔다고 한다. 현직 음악교사, 보험설계사, 자영업, 간호사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지역민들은 함께 소리를 맞추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바람으로 한껏 쏟아내고 새 힘을 얻어 돌아간다.
함 단장은 나이가 들수록 호흡이 딸려 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힘들어진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는 할 생각이라는 담담한 목소리에서 음악을 향한 굳은 신념이 엿보였다. 자신이 젊은 날 배운 것들을 알려주고 싶고, 설악윈드오케스트라가 한 단계 향상된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무료로 꾸준히 공연을 보여주는 악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에는 그냥 나팔 부는 게 좋아 전공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악기도 재밌지만 합주하면서 어우러져서 곡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들이 되게 좋았어요. 오케스트라가 해체되지 않고 지금처럼 오래 갔으면 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젊은 친구들에게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희망을 전하고 그렇게 지역에 전공생이 늘어나면 속초의 문화도 더욱 빛을 보리라 기대합니다.”
창단 후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어온 설악윈드오케스트라는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해 창단 10주년 공연을 가졌고, 올해는 오는 11월에 시민들과 공연장에서 만날 계획이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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