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상상이상연구소 대표와 홍기성 책임연구원.
상상이상연구소에서 주관한 꿈다락문화예술학교 ‘나있으속초’의 수업 모습.
작년 9월 17일 칠성조선소에서 열린 ‘청년, 속초 愛 비치다’ 미디어아트 전시회에는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시했다.
융합교육이 인기다. 각 교과목의 지식을 채우기 바빴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며 창의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인문학과 과학 기술의 융합이 초중고 학생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반으로서 우리 모두의 일상에도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도시에서 주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이러한 선진 교육이 속초시민들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속초를 거점으로 2022년 설립된 ㈜상상이상연구소는 미디어 중심의 인문융합교육 리빙 랩(Living Lab)으로, 속초를 비롯한 영동지역에 미디어아트, 사진, 문학 등 기술과 문화예술을 곁들인 융합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상상이상연구소가 추진한 사업 중 ‘상상, 시를 그리다’는 자신만의 시를 창작한 후 그 시문 데이터를 직접 그림으로 변환하는 기계장치를 만들고 코딩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을 이해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전국 170개 팀 중 우수 팀으로 뽑혀 청년공동체 장려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지난 한해 동안 상상이상연구소에서 진행한 사업들을 꼽아보니 열손가락이 모자를 정도다. 융합교육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동분서주했던 상상이상연구소의 김남희 대표(38)와 홍기성 책임연구원(34)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상상 속 아이디어, 현실의 작품으로 승화
“속초에 이주해 살면서 미디어 강사 활동을 오래 했지만 특히 강원 영북 지역에 문화예술 교육은 물론 기술 융합된 교육이 많이 부족하고 소외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 것에 뜻이 맞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창업을 하게 됐죠.”
김남희 대표와 홍기성 책임연구원은 2022년 속초문화관광재단에서 운영했던 시민 거버넌스 ‘속초살이’의 시민활동가로 처음 만났다. ‘속초살이’는 속초 이주민과 원주민들이 교류하며 함께 속초를 알아가는 거버넌스다. 영상 관련 일을 했던 두 사람은 속초에서 수준 높은 문화예술 관련 교육을 향유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현실에 공감했다. 비교적 문화예술을 접하기 힘든 지역민들에게 직접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의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싶다는 바람으로 2023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초기창업팀에 지원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향한 첫발을 디뎠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교육에 필요한 물품과 고가의 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고 사무실도 꾸릴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강원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공공기관의 교육 관련 공모에 많이 지원했는데 운좋게 대부분 선정이 돼서 지난해에는 사업을 풍성하게 운영을 할 수 있었어요.”
상상이상연구소에서 지난 한해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의 수는 두 사람이 기획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지원한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의 드림아트랩4,0 ‘동해 고래를 찾아서’, 예술쉼표 ‘나있으 속초’, ‘마음으로 찍는 사진노트’를 비롯해 강원문화재단 디딤돌 문화예술학교의 ‘속초 시 그리다’, ‘속초시, 놀면, 신나리’ 등 모두 상상이상연구소에서 주관했다.
교육 내용은 대부분 융합 교육을 모토로 하는 만큼 문학, 미술 등 예술적 감수성에서 비롯한 아이디어를 태블릿PC, 레고 로봇, 컴퓨터 코딩 및 3D 모델링과 프린팅을 활용해 현실의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시간을 쪼개어 속초문화관광재단의 시민기획 문화실험실 ‘문화로OK’에도 참여해 어르신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증진과 미디어 기기 활용 방법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우수 프로젝트 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김남희 대표와 홍기성 씨는 아동, 청소년, 성인,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층의 눈높이에 맞게 교육의 커리큘럼을 연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홍기성 씨도 처음 보는 장비와 기술들을 하나하나 공부해가면서 교육을 준비하다 보니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낮에 수업하고 저녁에 또 다른 교육 준비를 하다 보면 매일 밤 12시까지도 사무실 불이 환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김 대표가 아이들 마음 열기나 놀이 위주를, 홍 씨가 코딩, IT 등 기술 교육을 맡기로 역할 분담한 덕에 교육 마지막 차시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있으 속초> 마지막 사진 수업 때 어떤 분이 이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교육에 참여한 대부분이 ‘나는 사진 못 찍는다’, ‘예술가적 기질이 없다’는 마음으로 많이 오셨는데, 본인들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포토북 만드는 과정에서 진심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회복할 때 저희도 울컥하는 순간이었어요.”
시민들이 융합교육을 접하며 그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회복하는 순간이 김 대표와 홍기성 씨에게도 상상이상연구소를 이끌어가는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시민들과 미디어아트 작품 만들어 전시
이들은 교육뿐 아니라 청년 네트워크 기반 형성과 세대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청년 공동체 활성화 사업에도 지원하며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다양한 직군의 속초시민 10명을 모집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스무 번 넘게 가진 모임에서는 미디어아트 작가를 멘토로 초청해 지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미디어아트 기술을 배우며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작년 9월 칠성조선소에서 함께 준비한 ‘청년, 속초愛비치다’ 미디어아트 전시회를 3시간가량 짧게 열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찾아와 색다르다는 호평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김 대표는 지역민들이 속초와 관련된 스토리를 자신의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승화했다는 사실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전시회 준비까지 고된 시간이었지만 지난해 도내에서 유일하게 청년공동체활성화사업 우수팀으로 선발되는 쾌거를 이뤘다.
김남희 대표는 서울에서 속초를 매주 오가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신재준 미디어아트 강사를 비롯해 지역의 원로 문화예술 작가 및 문화 기획자들의 멘토링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지역 내 연결고리도 만들어주고 직접 교육 프로그램의 강의도 나서서 도와줘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상상이상연구소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의 협업과 심화 과정을 통해서 지난해 공유했던 융합교육 지식들을 좀더 확산할 계획을 그리고 있다. 작년 연말에 대부분의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홍기성 씨는 올 1월에 여유를 가지며 자기계발과 코딩 공부를 깊게 해볼 생각이다.
“지난해는 교육 참가자들과 함께 저도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역량이 정말 많이 오르고 성장하는 시간이었어요. 새해에는 코딩에 꿈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새해에도 상상이상연구소의 빠른 발걸음과 함께 지역사회 전반에 창의적 교육 문화의 새 바람이 불기를 희망한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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