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사자놀이의 기원을 찾는 연극 <보름>이 지난 11월 26일 칠성조선소에서 공연됐다.
최근 속초 청호동의 로컬리티를 다각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그동안 청호동 실향민의 정서는 극작가 이반의 희곡 <그날, 그날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향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의 정서가 아바이마을을 읽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90년대 말부터 관광지로 소비되는 아바이마을의 정체성 논의와 함께 몇몇 작품들이 발표되었지만 근본적인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속초민예총이 ‘갯배예술제’를 통해 실향민 2, 3세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활동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실향민 1세대의 문화유산을 정리하고 2, 3세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화기획은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활동인지 모른다.
속초사자놀이와 마술적 리얼리즘
젊은 연출가 손미애는 유독 속초사자놀이에 애착이 많다. 지난 2019년 발표한 단편영화 <속초사자놀음 길놀이>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아바이마을 일대에서 펼치는 ‘속초사자놀이 길놀이’의 과정을 담았다. 정월대보름,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 길놀이 끝에 펼쳐지는 마을잔치는 ‘북청사자놀음’의 원형을 그려내면서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그리움이 사자놀이로 전승되는 과정을 반영했다. 지난해 발표한 연극 <보름>은 속초사자놀이의 기원을 찾는다. 90년대 초반 사자춤을 배우기 위해 북청사자놀음 보유자 김수석 어르신을 찾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제 사자춤을 배웠던 주동진 배우가 노인역으로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은 북청이 아닌 속초에서 전승되는 사자놀이에 어떤 ‘믿음’이 투영되기에 타향에서 고향의 문화를 전승하게 되었는지를 탐색한다. 그것은 실향민 1세대의 고향 회복 믿음에 대한 2, 3세대의 화답처럼 보이기도 했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사자춤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그리움의 극복이자 상실감의 회복임을 보여준 것이다. 2023년 작품은 지난 11월 26일 오후 5시 칠성조선소에서 공연되었다. 기본 이야기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장소의 진본성을 보여준다. 대보름날 무대 안과 밖을 오가며 연극과 실제를 구분할 수 없는 일종의 메타연극적 구성이다. 실향민 문화의 재해석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칠성조선소 전시실에서 시작한 연극은 어둠이 내리고 보름달이 뜨는 저녁 즈음 마당으로 나와 실제 속초사자놀이 공연을 보여준다. 연극무대를 나온 마당은 정월대보름 길놀이의 현장이 되며 관람객은 그대로 아바이마을 주민이 된다.
손미애 연출가에게 속초사자놀이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처음 속초사자놀이 길놀이를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사자탈을 들고 터벅터벅 가던 사람들이 탈을 쓰고 춤을 추자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절을 하고 소원을 빌었어요. 그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한국형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렸어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기대, 희망이 사자춤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손미애 연출가는 강원도 무형문화재가 된 속초사자놀이가 왜 북청사자놀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연극적 해석과 함께 아바이마을 문화의 차별성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의 기원을 탐색하였다.
아는 아바이마을, 다른 아바이마을
지난 12월 2일 오후 2시 속초시 다함께 돌봄센터 2층 대강당으로 아바이마을 어르신들이 모였다. 2023 속초 아바이마을 지역연구 심포지엄 ‘속초 아바이마을 주민 생애서사 재구조화’ 발표현장이다. 속초문화도시센터와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학생들이 함께 진행한 속초지역 연구는 3번의 온라인 스터디와 3주에 걸쳐 2박3일간의 현장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동안 아바이마을의 주민 생애사 관련 연구는 전면적이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실향 1세대 생애사에 그쳤다. 이날 발표는 질적연구방법론의 하나인 ‘근거이론’으로 어르신들의 생애사를 재구조화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근거이론은 연구자가 참여자의 관점에 근거하여 과정이나 행위에 대한 이론을 도출하는 기법이다. 아바이마을의 실향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외부인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날 발표는 총 5개 팀이 준비했다. 일본인 대학원생 마에다 타즈코는 관광과 정치, 국제교류의 시점으로 아바이마을을 살폈다. 유명 드라마 속 속초의 이미지, 접경지로서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의 중요성, 한일 양국의 상호교류 활동을 강조했다. 윤여진은 김상호 청호동 노인회장과의 대화에서 실향민 고령 남성의 사회적 고립감을 읽고 이의 해소를 위해 경제활동의 지속과 동년배 교류 등의 커뮤니티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석나영·이재아는 민봉순 어머니의 생애사에서 아바이마을 음식문화 계승을 위한 레시피 계승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철웅·엄환희는 아트플랫폼 갯배 활동가 심삼옥, 심정화씨와의 대화에서 관광객을 위한 마을 인프라 개발이 아니라 주민도 만족하는 변화를 위해 마을활동가의 지속적인 유입 환경 조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지우·이서정은 노인회 총무 박경훈과의 인터뷰를 통해 타고난 공경심으로 노인회 총무 활동을 하지만 총무직 지속의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을 발견하고 개인의 희생과 역량에 의존하지 않는 마을 운영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각 팀의 발표 주제는 마을공동체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그동안 아바이마을의 차별화된 서사가 마을주민을 대상화 하는 측면이 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각 연구자들은 주민과의 유대관계와 폭넓은 연구방법으로 보편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속초문화도시센터는 연구를 통해 드러난 현상의 문화적 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문화도시의 범주에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를 이끈 강윤주 교수는 “두 시간 여의 발표 시간 내내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즐겨주셨다”고 말하며 “연구대상이 대상화되지 않은, 연구참여자화된 연구를 해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아바이마을 주민과 전승문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은 속초문화도시 사업과 만나면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게 되었다. 이런 성과가 다른 마을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인섭 전문기자
지난 12월 2일 ‘아바이마을 주민 생애서사 재구조화 심포지엄’ 후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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