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두 번 청소년 상담센터에 간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필자는 늘 그림책을 펼친다. 아이와 상담을 끝내고 사무실에서 이은희 소장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아이들의 환경 오염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속초 환경자원 사업소에 각급 학교 아이들 200명을 자원 재활용 및 환경 오염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최근 지역의 문화 활동에 참여한 청년들이 펼치는 ‘플로깅’과 ‘줍깅’이라는 활동과 속초문화관광재단에서 추진하는 ‘속초문화도시 조성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플라스틱 프리호텔’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최근 들어 환경에 대한 새로운 문화 운동을 자주 접하게 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림책 공부를 20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 그림책 출판의 경향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이슈가 무언지 절로 느끼게 한다.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자주 발간된다. 그만큼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가 더 이상 미루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림책 ‘비늘과 파편’은 대학생인 김수진 작가가 작업한 첫 그림책으로 월드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 신인상 수상작이다. 그림책을 펼치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푸른색으로 눈을 시원하게 한다. 그 바다의 푸른 물살을 힘껏 헤엄치다 잠시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바다의 청량감을 만끽하던 주인공은 둥둥 떠다니는 폐어망 쓰레기 사이로 페트병 고리에 걸린 물고기와 눈이 마주친다, 페트병 고리에 걸린 물고기를 쫓다가 주인공은 아래쪽에서 잡아당기는 거대한 힘에 이끌려 물속에서 정신을 잃는다. 깊은 물 속에서 다시 눈을 뜬 주인공은 페트병 고리 물고기의 이끄는 대로 바닷속 여정을 떠난다.
해파리처럼 떠다니는 비닐봉지에 휩싸인 채 죽어 가는 물고기들과 폐어망과 노끈에 휘감기고 쇠갈고리에 찔린 고래들의 무덤을 만난다. 그리고 바다 밑까지 훑어서 모든 생물과 쓰레기까지 저인망 그물의 거대한 욕심을 눈으로 보게 된다. 주인공은 비닐봉지를 벗겨내고, 밧줄과 폐그물을 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거대한 수염고래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가 위벽에 박힌 거대한 닻을 뽑아서 고래가 뱃속의 모든 쓰레기들을 토해내게 만든다. 그러다 폐그물의 밧줄에 발목이 휘감겨 다시 물속에서 의식을 잃어간다. 이번에는 물고기들이 주인공의 발목에 감긴 밧줄을 풀고 주인공을 물 위로 밀어 올린다. 백사장에서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발목에 쓸린 자국과 푸르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림책 ‘비늘과 파편’은 원시 생명의 시작이며, 미래 인류 생존의 키워드인 바다가 인간의 욕심과 생존이라는 이유로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글자도 없이 파랑색, 검정색, 흰색만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보이는 쓰레기와 보이지 않는 쓰레기로 바다를 더럽히는 일은 곧 우리의 내일을 없애는 일이라고 소리 없는 경고장을 보여주고 있다.
어제 아침 아들 가게에서 배달음식물 봉투를 정리하면서 그림책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수저도, 젓가락도, 그릇도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 용기도 따라왔다. 분리수거를 하면서도 그들의 처리 과정에서 생길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 봤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뼈만 남은 생선이 담긴 비닐봉지가 둥둥 떠다니는 장면에서 필자는 자꾸 우리 인류의 내일을 보는 것 같아 숨이 턱 막혀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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