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나사못의 기억>
권정남(사진)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나사못의 기억>을 펴냈다.
시집에는 1부 ‘참빗’, 2부 ‘마트로시카 그 영원한 모성’, 3부 ‘문득, 천년의 미소가’, 4부 ‘속초엔 속초역이 있다’로 나눠 모두 67편의 시를 담았다.
표제작인 ‘나사못의 기억’은 타인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는 슬픔의 전이를 느끼며 쓴 시이다.
‘<상략>식솔들의 나사못이 되어/ 한 치 틈 없이 팽팽한 삶을 조이며/ 살아오신 아래층 할머니/ 나선형 길 위에서/ 기억을 놓아 버리고/ 자신마저 잃어버린 채/ 묵은 시간 속에서 서성이신다<하략>(‘나사못의 기억’ 중 에서)
고령화 시대 누구한테나 올 수 있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래층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았다.
권 시인은 시집 해설 ‘만남, 내 詩 앞에서 문을 두드리다’를 직접 썼다. 서두에서는 유년부터 중년까지 깨달음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시에 홀리게 된 연유가 나온다. “참빗’ ‘놋그릇을 닦다’ ‘아버지의 책’같은 시를 쓰면서 내 안의 뿌리, 그 원초적 이미지들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했다”고 돌아본다.
‘가자미를 구웠다/ 등속 빳빳한 뼈를 들어내니/ 결 고운 참빗이다// 할머니 임종 전날 머리 빗겨 드리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참빗이 여기까지 왔다/ 반야선 타고 저승 가는 길에/ 레테 강을 건너시다가 물속에 빠뜨렸나 보다<하략>’(‘참빗’ 중 에서)
‘사막의 해’ ‘왕가의 계곡’ ‘누에 깃을 치다’와 같이 여행을 통해 쓴 시들도 시집에 실었다. 시인은 “여행이야말로 광활한 바다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무한한 창작의 산실”이라고 말한다.
시집 4부는 시인이 이십여년 전 3월 꽃샘추위 속에 이사온, “이젠 대청봉 바람이 붙잡아 떠나”지 못하는 ‘속초’에 대한 이야기다. 속초 사람이 되어 머리카락에도 끈적한 소금 냄새가 나고 속초의 눈부심에 홀려서 살아왔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와 높은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속초가 다시 낯설어지고 있다.
‘<상략>고층 아파트와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와 길 잃은 달이/ 콘크리트 벽과 벽 사이에 끼어/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하략>’(‘달이 신음하고 있다’ 중에서)
‘속초엔 속초역이 있다’는 원산행 철길과 속초역 기적 소리가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 실향민의 애환과 아픔을 생각하며 쓴 시다.
‘<상략>삼일 후면 돌아가리라 했던/ 실향민들 가슴에 칠십 년 동안/ 울고 있는 원산행 기적소리// 분명, 속초엔 속초역이 있다’(‘속초엔 속초역이 있다’ 중에서)
시인은 시집 ‘시인의 말’에서 “글 쓰고 엮는 일은 탑 쌓는 일”이라며 “내 안의 길거나 짧은 문장을 탑신에 넣었다가 뺐다가를 반복한다. 이끼 끼지 않는 언어들이 날개 달고 비상하길 소망하며 절체절명의 언어로 탑을 쌓는다”고 했다.
권정남 시인은 1987년 <시와 의식>, 2016년 <현대수필>로 등단했다. 시집 <속초바람>, <서랍 속의 사진 한 장>, <물푸레나무 사랑법>, <연초록, 물음표>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서다>와 수필집 <겨울 비선대에서>를 펴냈다. 강원문학상, 강원여성문학상, 강원문학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회원, 강원문인협회 이사, 속초문인협회·설악문우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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