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들 중에는 살면서 크게 공감하게 되는 속담들이 몇 있다.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도 그중 하나이다. 염병은 요즘 쓰는 말로 장티푸스이고, 과거에는 치사율이 매우 높았던 이 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고뿔은 감기를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이 속담을 다시 새겨보면 아무리 다른 이가 죽을병에 걸려도 내가 며칠 앓으면 나을 감기보다 체감하는 증상이 못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다. 즉, 내 입장이 항상 우선이고 공감되는 부분도 역시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지난 여름초입에 뜬금없이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렸다. 머리의 이마 부분에서부터 왼쪽 눈, 왼쪽 콧잔등을 타고 수포가 발생되었다. 주위에서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대충 들어만 봤지 실제로 내가 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이 병으로 인해 결국은 입원까지 해야 했고, 올 여름을 통째로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 이르는 지금까지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이 병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에 몸살감기인 줄 알고 이비인후과를 시작으로 안과, 통증의학과, 내과 등등을 전전했고, 나중에 수포가 이마에서부터 불거진 후로 피부과 진단을 받으며 이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병을 앓고 보니 주변에 대상포진에 걸렸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고, 심지어 예방주사 접종을 받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아직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이젠 어느 정도 증상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르지는 않기에 조심하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문득 내 몸이나 한 국가나 사회가 처하는 상황들이 좀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한 나라가 부국강병의 나라, 문화대국으로서 존재하려면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전체 시스템이 건강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활하게 건강하게 작동하던 시스템들이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문득 대상포진에 걸렸던 한 개인으로서의 나와 한 나라나 사회를 병립해서 살펴보니 재밌게도 유사한 점들이 많이 보인다. 우선 발병 초기에는 몸이 예전과 달리 몹시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다. 기침이나 재채기도 많이 났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한 나라로서도 이곳 저곳에서 병들어가는 신호음들이 들린다. 국가의 체질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내부에서 잠복해 있다 발현되는 병이든 외부로부터 감염되거나 유래되는 병이든 정확한 병명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기침이 난다고 이비인후과나 눈이 아프다고 안과에 가는 식의 대증적인 처방보다는 원인을 찾아 뿌리부터 치료하는 처방이 중요한 것이리라. 필자처럼 발병 초기에 적절한 대처를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증상이 확대되기에, 국가의 시스템도 에러가 발생하면 단편적인 증상 해결보다는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유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겠다.
같은 대상포진이라도 팔 다리나 등에서 발병한 경우에는 치료기간이 비교적 짧고 위험도가 낮은 반면에, 머리 쪽에서 발병한 경우에는 치료기간도 길고 위험도가 높으며 후유증도 오래 남는다고 한다. 한 국가의 시스템도 발병부위에 따라 치료 방법과 시간이 달라질 것 같다.
한 사람이든 한 국가든 늘 한결같은 항상성을 지니기는 쉽지 않다. 여러 방면으로 무리가 따르는 일들이 이어지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에 흔들릴 수 있는 여지도 많다. 한번 병에 걸리면 많은 시간과 비용과 고통이 수반되듯이 국가의 시스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 몸 돌보듯이 나라와 사회의 제반 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건강하게 시스템이 유지되게 하는 상비약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국가나 사회 시스템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참여야말로 결국 남의 염병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고뿔을 예방하는 길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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