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선 피노디아 큐레이터가 미켈란젤로 뮤지엄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피노디아 최진선 큐레이터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속초 엑스포광장 건너편에 위치한 피노디아 건물에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탁 트인 공간 내부 곳곳에 배치된 작품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999년 관광엑스포의 주제관이었던 건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특히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수많은 작품을 대한민국 작은 소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만큼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하며 관리하는 큐레이터(학예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14세기부터 16세기 르네상스를 오롯이 느끼기에는 배경지식이 부족할 터이다. 다빈치 뮤지엄에서 처음 만난 최진선 큐레이터(27)는 “다빈치 뮤지엄과 미켈란젤로 뮤지엄 모두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루가 모자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피노디아에 근무한 지 이제 5개월 차라는 최진선 큐레이터는 한 작품 한 작품 설명할 때마다 차분한 목소리 아래 내면의 깊은 열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연고 없는 속초로 이주해 학예사의 꿈을 일구어가는 최진선 큐레이터의 사연에 주목했다.
하고 싶은 것 찾아 박물관 일에 도전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 박물관에 많이 데려가셨는데 그게 저한테 너무 좋았던 거죠. 성인이 되어서도 박물관과 미술관은 꾸준히 다녔어요.”
최진선 씨의 대학 전공은 원래 생명공학이었다. 이과였지만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기분 전환하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찾곤 했다. 어느 날 ‘내가 평생을 바라보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뭘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좋아하던 박물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작이 늦었지만 도전은 해봐야겠다는 마음에 역사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피노디아에 오기 전에는 수도권에 살며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받아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최 큐레이터는 최근에 개관한 피노디아에서 기본적인 것부터 같이 만들어 가다 보니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해야 할지 깊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팸플릿부터 체험 프로그램까지 함께 초석을 닦아가면서 책임감도 더 생기고 장소에 대한 애정도 생기는 것 같아요. 서툴지만 조금씩 바꿔나가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그는 수석 큐레이터와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박물관을 관리ㆍ운영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가끔 도슨트로 투입되어 관람객을 안내하며 작품의 의미와 시대 흐름, 인물의 생애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힘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고생한 시간들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 직접 볼 수 있어 전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 경험 쌓는 데는 훨씬 도움 된다고 긍정의 웃음을 보였다.
다른 세상 가는 타임머신·통로 역할
최근에는 획기적인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물관에 온 사람들이 단순히 훑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과 퀴즈 등을 통해 다빈치, 미켈란젤로 두 거장의 인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다빈치의 말 중에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보려는 사람들, 보여주면 보는 사람들, 보여줘도 안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박물관이 관람객을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희 뮤지엄은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로 데려가 그 시절 예술가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볼 수 있는 타임머신 또는 통로가 되는 거죠. 앞으로도 또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일하며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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