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상념 가득한 화창한 가을날 멍 허니 걷고 싶어졌다.
해는 짧아지고, 들깨 꺾는 소리에 밭마다 고소한 내음, 떨어진 은행은 내 발걸음 더디게 한다.
영랑호 산책길.
호수 사방 주변으로 완만한 경사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어, 영랑초등학교 뒤 호숫가 너른 모래사장에 한 채의 판잣집과 파란색 전마선이 누어져 있고, 바람 불면 파도 물결 모래사장 잦아들며 내는 소리, 호숫가 포말 굴러가며 날아가는 모습.
민물과 바닷물이 자유롭게 섞이는 곳에 뚝저구 붕어 황어 배대미 숭어 등 번갈아 왕래하는 모습은 영랑호 개발 전 모습이다.
1976년 9월 동방원양은 금호동 600-7 일원 81만107㎡ 대상으로 유원지 조성 이후 1981년 현재 리조트골프장이 있던 자리 논에 기르던 비단잉어와 보광사 앞 양식장에 기르던 비단잉어는 볼만한 눈요기 거리였다. 투자 개발로 유원지 아름다운 조경과 작으나마 동물원 등 시민들에게는 볼거리를 주었으니, 영랑호 개발 기대감이 컸으며, 후에 리조트와 골프장이 들어서며 영랑호 둘레길이 만들어지고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쉽게 영랑호를 찾고 즐길 수 있게 되어 본격적인 관광 속초개발의 시발점이었으리라.
영랑호 입구 문인 표지석 지나 오른편 길에 접어든다. 초록 조릿대 숲이다. 가슴 열기를 씻어 내려주는 효능이라는데 보는 것으로는 효과가 없나보다, 가을바람 댓잎 소리에도, 푹 우려야 울화가 없어지겠지.
호숫가 산책길 솔방울보다 크네, 잣송이 인가, 그보다는 작네. 히말라야 삼나무 송이였네. 진한 솔향 내음 진액을 품고, 너는 언제 히말라야에서 여기까지 왔니. 크기가 족히 30m는 되어 보인다. 하늘을 뚫은 듯하다. 많은 눈이 와도 품에 품지 않아 여간해서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는다.
미국자리공을 아시나요? 이방 식물이지만 하도 무성하게 잘 자라 이제는 귀화 한국 식물로 불리만 하다. 성인 키 정도 자라 가을날 보랏빛 까만 포도송이 열매로 관심을 끌 만한 자태를 보여준다. 뿌리 캐어 보면 또한 탐스럽다. 품질 좋은 더덕처럼 보인다. 그러니 먹어 볼 수밖에, 그러다가는 큰일 난다. 상륙(商陸)이라는 독초이기 때문이다. 체내 독소를 제거하는 효과는 매우 정교한 배합과 적정량일 때 기대할 수 있다. 잘못된 복용으로 미식거림, 구토, 설사, 신장기능 저하라는 위험성을 간과하면 큰일 난다. 그런 미국 자리공이 산책길 주변 지천이다.
영랑호 배 띄우고 노닐던 안축(安軸) 기념비를 지나, 호수가 바위틈 엷은 보랏빛 해국을 보았다. 골프장 7번홀 산불로 타다 남은 소나무 아래 새하얀 구절초는 가을 산기슭 얼굴 마담이다. 호수윗길지나 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더불어 하얗게 피어나고, 노란빛 미역취로 가을 영랑 들국화들 만끽한다. 가을 들국화 햇빛에 바짝 말려 우려 마시면 마음 또한 차분해진다.
떠나가는 가을 발목 잡아매어 곁에 머물라 싶은 수크령이 영랑 산책길 속초(풀 매어 놓은 동네)에 지천이고, 산기슭 억새, 물가 갈대는 속초(풀 동네)라 가을 정감 더한다.
호랭이 웅크린 범 바위 아래 개맥문동 보인다. 보약다운 약재다. 뿌리 굵은 부분이 보리를 닮아 맥문(麥門)이고, 겨울에 초록빛 잎 모양새로 동(冬)이다. 덩이뿌리는 기침·가래를 멎게 하고, 진액을 보충하는 탁월한 효능으로 사랑받는 약재다. 영어로는 스네이크 비어트(snake’s beard) ‘뱀 턱수염’, 뱀 같은 긴 꽃대, 턱수염을 닮은 뿌리,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뱀의 습성과 그늘에서 자라는 맥문동의 습성이 함께 동·서양 이름으로 반영되었다.
영랑호 순환 산책길은 호숫가 모래사장을 흙으로 매립하여 길을 내었고, 비단잉어와 수초 제거하기 위해 외래어종 백연어(초어)를 이식하는 등의 과정에서, 녹조가 들고 수질환경이 안 좋아지자 영랑호 배수로를 바다에 개설하여 수시로 바닷물이 쉽게 드나들게 하였다. 근래 장천 하류 물고기 떼들 간혹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는 모습에, 영랑이 범바위로 올라 호수를 관망했을 모습에, 영랑이 호수윗길로 걸으며 호수로 물든 설악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모습에 입가 미소를 머금는다. 가을 하늘아래 산기슭 들국화, 호수 물결, 자전거 체인 소리, 종알거리는 영랑 연인.
현재 영랑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바로 속초 영랑의 보약이었다.
윤대락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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