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일러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했던가? 한나라의 선거 풍토는 바로 정치발전의 척도이자 정치의식의 직접적 표현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코앞에 둔 요즈음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정치의식이 이 정도인가, 아니면 정치가들의 정치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정치의식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여튼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 광복 78주년 정부 수립 104주년은 문자 그대로 격동의 시간, 파란만장의 시대, 극복의 연속이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하근찬 작가의 〈수난 2대〉는 2차 대전에서 팔을 잃은 아버지가 6.25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아들을 업고 마을 앞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연속되는 우리 민족사의 시련 극복을 단편적으로 묘사했다.
식민지 시대의 설움과 최빈국의 가난, 그리고 미국 원조로 출발한 우리는 1960년대 이후 공업화, 근대화 시대를 누볐고 1997년에 이르러서는 IMF 고통도 겪었다. 민주와 독재의 반복 속에서 그래도 우리는 민주주의 방향을 놓치지 않았고 근대화의 길을 굳건히 걸어왔다. 아직 그 완성된 모습을 이룩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방향만은 잃지 않고 꾸준히 이어왔다. 시민으로서 자기발전은 물론, 시민이 국가의 주체가 되는 시민사회로의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 만큼 일반 대중의 참여와 창의성이 중요해졌으며 NGO활동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미중유의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일종의 자부심을 가질 때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한 매듭을 마무리 짓고 새롭게 전환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과연 정치인들이 이렇게까지 해도 되겠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철새 정치인들이 이당, 저당 옮겨 다니고, 신당 채비를 하고 있는가 하면, 권력부패와 갖가지 비리, 공작과 음모, 매수와 폭로로 정치판이 얼룩질 대로 얼룩지고 있다. 이러한 행태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구었다는 자부심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구석에서 이처럼 저급하고 비열한 정치 행태가 청산되지 못한 채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국민을 화나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정책적 과오는 물론, 부패와 비리는 반드시 드러나고 폭로돼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그 방법상의 비리 역시 용납돼서는 안 된다. 이른바 정의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 목적 못지않게 수단 또한 정정당당해야 비로써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선진국에서는 상대방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주변 인물을 매수하다가는 그대로 정치 생명이 끝나기 마련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빗대어 꾸짖은 말들은 바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장세호
전 속초시 지방행정 동우회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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