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오랜 가게는 긴 세월 지역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다. 오랜 가게의 내력에는 바다와 실향, 노동과 환희, 애환이 섞여 왁자지껄 버무려진 속초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속초의 역사가 된 ‘속초 오랜 가게’를 찾아 한 곳 한 곳 연재기획으로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본다.
<편집자주>
지난 2020년 추석 때부터 서울칼국수를 맡아 온 박관영·박영숙 부부.
하루 세 끼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을 수만 있어도 큰 복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칼국수 한 대접을 다 비우고 나면, 그 포만감에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허기와 배고픔을 달래준 칼국수야말로 서민들에게 ‘하루의 행복’을 가져다준 음식이었다.
속초 시내에 오래된 식당들이 제법 있다. 그중 사업자등록증에 적힌 개업일로 가장 오래된 식당이 서울칼국수이다. 속초시 중앙로 108번길 67, 청초호변 북쪽 옛 수협어판장 인근에 위치한 서울칼국수는 사업자등록증에 개업일이 1982년 1월 19일로 나온다. 식당에 걸린 영업허가증에도 최초신고일자가 같은 날짜로 적혀 있다.
실제 이보다 4년 앞선 1978년에 식당 영업을 시작했다고 하니, 서울칼국수는 올해로 개업 45주년이다. 화려한 별미 맛집도 아니고, 10평 넘는 공간에 테이블 7개를 갖춘 소박한 칼국수 집이 45년을 지내왔다는 게 정말 놀랍지 않은가. 개업 1년도 못 넘기고 문을 닫는 식당도 제법 있건만, 서울칼국수는 무슨 저력으로 반 세기를 지내올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식당 문에 자물쇠를 달지 않았어요. 새벽 2, 3시에도 뱃사람들이 일 보러 나오거나 바다에 나가려고 어판장에 나와서는 그냥 식당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그러면 자다가도 어머니와 동생들이 일어나서 칼국수를 끓여 주었지요. 부둣가 사정을 잘 아시는 아버지는 절대로 식당 문을 잠그지 못하게 했어요. 예전에는 일요일은 물론이고 명절날 오후에도 장사를 했어요. 혹시라도 문을 닫으면 아버지가 난리가 났어요.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죠. 식당이 곧 집이다 보니, 언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몰라서, 늘 긴장하면서 평생을 사셨죠.”
수협 어판장으로 이전 후 손님 넘쳐나
1970년대 초반 박오만·최윤선 부부는 서울 면목동에 살다가 속초 수복탑 근처로 이사를 왔다. 처음 속초에 와서 남편 박씨는 전마선(뗀마)을 사서 조개를 캐고, 부인과 가족들은 조개를 까는 부업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작은 빵집을 시작했지만 그만뒀다. 다시 1978년 수복탑 건너편 일억슈퍼 옆 건물 1층에서 충무식당이라는 상호로 짜장면 집을 시작했다. 장사가 별로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박오만씨는 전국에서 장사가 잘 된다는 집을 돌아다니며 배운 지식으로 칼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칼국수가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 점심 때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 식당 옆에 있는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온 사람들도 칼국수를 시켜 먹었다.
서울칼국수는 1980년 수협 어판장 옆 현재 자리로 가게를 이전했다. 건물에 방이 하나 있어 온 가족이 같이 살면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때 상호를 ‘서울분식’으로 바꿨다. 그리고 다시 1982년에 상호를 ‘서울칼국수’로 바꾸고, 어머니 최윤선을 대표자로 사업자신고를 했다. 최씨는 이때부터 2020년 9월까지 꼬박 38년간 서울칼국수를 운영했다. 딸 박경심씨가 함께 식당 일을 거들기도 했다. 지금 서울칼국수의 대표는 어머니 최윤선씨(81)이지만, 2020년부터는 아들 박관영(61)씨와 며느리 박정숙씨가 운영하고 있다. 아들 부부가 맡은 후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크게 고전을 했다. 한 1년간은 경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19가 끝난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판장 옆으로 옮긴 칼국수집의 인기는 당시 속초의 수산업 경기만큼이나 좋았다. 1980년대는 명태, 오징어, 노가리(명태새끼)가 많이 났다. 한 마디로 개락이었다. 수협과 부둣가에 뱃사람들이 새벽부터 붐볐다. 식당 문을 열고 나가면 땅을 밟지 못했다. 명태가 식당 앞까지 가득 부려져 명태를 밟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생선을 나르는 리어커꾼 아저씨들은 일이 고되고 주머니는 넉넉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칼국수를 무조건 곱빼기 양으로 담고 가격은 저렴하게 받았다. 싸고 푸짐한 양에 손님들이 넘쳐났다. 온 가족이 모두 식당 운영에 나섰다. 특히 어머니 최윤선씨는 1980년대 힘든 배달일로 골병이 들었다.
“주문을 받아 적은 공책이 2~3장이 넘어갈 정도로 주문이 밀리기도 했어요. 수협 주변 상회 사람들이나 수협 중매인들은 식당에 와서 먹기도 했지만, 바쁠 때는 배달시켜 먹었지요. 어머니가 머리에 쟁반을 이고 배달을 다니셨어요. 주문량이 많을 때는 칼국수 열 그릇을 3층으로 겹쳐 쌓고 그 위에 신문지를 덮어 머리에 이고 배달을 다니셨지요. 쟁반에 칼국수 네 그릇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쟁반을 놓고 세 그릇 얹고, 또 그 위에 쟁반을 놓고 세 그릇을 올렸지요. 더운 날엔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수협 주변 어업무선국과 사무실 등 2, 3층 건물을 수없이 오르내리시느라, 어머니 허리가 그때 다 망가진 것 같아요.”
부모님 때보다 맛 떨어진다 할까 늘 긴장
1990년대에도 서울칼국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도 했다. 어떤 손님들은 문 앞에 테이블 2개를 갖다 놓고, 빨리 달라고 재촉해서 먹고 가기도 했다. 식당 안에 자리가 없어 뒷문 밖에서 국수 그릇을 받아서 먹고 가는 손님들도 있었다. 우체국 집배원들은 오후 2~3시, 택시 기사들은 오후 3~4시경에 주로 왔다. 집배원들은 식사를 하고 잠시 쉬면서 전표 계산을 했다. 택시기사들은 방에서 잠시 누워 쉬었다가 가기도 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서울칼국수도 침수 피해를 크게 입었다. 청초호 바닷물이 150cm 가량 차올랐다. 집은 물에 잠기고 그릇이나 집기는 둥둥 물에 떠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식당 건물이 바로 주거공간이라 급하게 집을 보수해야만 했다. 청초호변 일대가 태풍 피해가 워낙 심해서 공사 자재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때 공사한 건물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서울칼국수는 예전부터 저렴한 가격에 양을 곱빼기로 주는 집으로 유명하다. 박관영씨는 보통 중국집에서는 밀가루 1포대로 100그릇 분량의 면이 나온다는데, 서울칼국수는 면이 80그릇 정도 분량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저녁에 미리 밀가루 반죽을 해서 2인분씩 비닐 위생팩에 담아서 밤새 냉장 저온 숙성해서 사용한다. 밤새 글루텐이 형성되면 면이 밀착돼서 다음날 아침이면 쫀쫀해진다. 비빔이나 냉국수는 삶아서 바로 찬물에 빨면 면발이 탱탱하다. 그렇게 손님상에 올리면 특히 젊은 손님들이 좋아한다.
서울칼국수 육수는 양파, 대파, 멸치, 다시마, 무를 넣어 끓여내 시원하다. 손반죽한 면에 육수를 붓고 감자, 버섯, 호박을 넣고 끓여낸다. 그 위에 중탕한 계란과 쪽파, 김, 깻가루, 고추와 후추가루를 살짝 뿌려 내면, 45년 한결같은 서울칼국수가 완성된다. 얼큰한 맛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양념다대기와 배추김치, 무생채가 함께 나온다. 예전에는 인공조미료도 사용하기도 했는데, 여동생 박경심씨가 어머니와 같이 식당을 운영하면서부터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있다. 김치는 직접 배추를 절여서 담근다.
메뉴는 칼국수와 냉국수, 비빔국수, 콩국수까지 총 4가지. 국물 맛이 좋은 칼국수는 6천원이다. 한 대접 가득 담은 칼국수를 6천원에 먹을 수 있다니.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입구에 붙어있는 물가안정 모범업소 선정 간판이 새롭게 보인다.
45년 동안 장사를 하다보니,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을 못 잊어 어른이 되어 자식을 데리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손님들이라고. 이제 3년째 식당 운영을 맡고 있는 박관영씨는 부모님이 할 때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늘 긴장한다. 아버지 말씀처럼 찾아오신 손님이 문이 닫혀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늘 가게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다.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서민들의 배고픔과 허기를 달래온 식당. 2대에 걸쳐 온 가족이 수고로운 노동으로 빚어온 서울칼국수의 역사는 소중한 우리 지역 자산이기도 하다. 찬 바람이 불어 몸이 서늘해지면 따끈한 칼국수가 생각난다. 출출한 배를 채우고 몸을 데우는 데는 역시 국물 맛이 좋은 서울칼국수가 제격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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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을 지낸 서울칼국수는 저렴한 가격에 양을 곱빼기로 주는 집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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