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나는/ 활짝 피어날 수 있어.
주인공이 아니면 어때./ 나를 위한 자리가 없으면 어때.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나는/ 꿈을 꿀 수 있어.
작지만 힘이 있는 나는/ 여리지만 살아 있는 우리는.
틈만 나면.
시(詩)가 아닙니다. 2022년 천보추이 국제아동문학상을 수상한 안순옥 작가의 그림책 <틈만 나면>에 나오는 글 텍스트이다. 그림책을 넘기면 우리가 평소 눈여겨보지 않던 곳에서 푸른 생명을 키워가는 그들이 보입니다.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초록 잎사귀가 고개를 내밀고, 딱딱하고 거친 아스팔트, 잿빛 하수구, 담벼락 틈, 지붕 위, 맨홀 덮개의 작은 틈에서 서로 다른 생명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해서 그곳에 뿌리를 내린 게 아닙니다. 누군가는 바람에 실려서, 다른 누군가는 새의 소화 활동에 의해서 그곳에 자리 잡게 됩니다.
사람도, 나무도, 풀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자리를 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냥 주어지는 거죠.
길을 가다 문득,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노랗게 고개를 내민 들꽃을 만날 때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늘 함께 합니다.
들풀들은 바람결에 날아와 앉은 곳에서 한 줌의 흙과, 한 모금의 물과, 한 줄기 빛만 있으면 잎을 키우고, 줄기를 뻗고, 마침내 꽃을 피워냅니다.
그림책 속에서 화분의 주인공 자리 곁에서 싹을 키우고, 벤치의 나무살 사이로 목을 길게 빼고 몸을 올려 자리를 꿰찬 들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멋진 곳이 아니어도 좋아… 나만의 춤을 출 수 있다면.”
가느다란 선으로만 보이던 담쟁이가 오르고 또 오르다, 결국은 담장 위에서 푸른 손바닥을 흔드는 모습은 언제봐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 책 <틈만 나면>은 이렇게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풀의 생명력에 주목하고, 들풀처럼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한 위로와 안부를 건넵니다.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지만 스스로의 삶에서는 당당한 주인공인 존재들. ‘멋진 곳이 아니어도’, ‘한 줌의 흙과 하늘만 있다면’ 성장하고 자라는 존재들의 이야기. 중요한 것은 나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그림책입니다.(출판사 리뷰 인용)
최근 소호 259에서 진행하는 청년마을 사업 ‘라이프 밸리’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속초로 워케이션 온 젊은 친구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고민과 아픔과 두려움이 보입니다.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상담프로그램에서 만난 학교 밖 청소년에게서 잃어버린 단어 ‘꿈’을 만납니다.
속초가 좋아 속초에 살기 위해 내려왔지만,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밥이 되지 않아서 방황하는 청년들을 만나면 무기력한 나 자신을 만납니다.
그럴 때, 그들에게 제가 도움 줄 수 있는 일은 이 그림책 <틈만 나면>을 보여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작지만 힘이 있는 너’와 ‘여리지만 살아 있는 우리’가 함께, 여기 있다고….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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