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순살을 보다
일찍 길을 떠났다. 오늘은 차량을 SUV로 바꿨다. 길이 험해진다는 예고다. 몽골에서 가장 높고 큰 흉고르엘스 모래언덕(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쉬는 곳이 화장실이다. 중간에 정차했다. 또 말보고 꽃을 따리라. 꽃을 따는 게 아니라 꽃을 만들었다. 황량한 곳에 알록달록한 양산이 펴지며 멋진 화폭을 만들었다. 행위 예술이다. 양과 염소는 무리를 이루고 있다. 염소가 그 무리를 이끌고 있단다. 말 낙타 소는 뜨문뜨문 몇 마리씩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지나도 지나도 같은 풍경이다. 랜드마크가 없으니 얼마나 왔는지 어디쯤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그저 그 사막이다. 우리는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인생의 고비(苦悲)를 겪고 여기에 와 있다. 길은 애초에 나 있었다. 가는 곳이 길이다. 네비도 없이 본능으로 달린다. 몇 대의 차가 같은 길로 가지 않는다. 차들은 각자의 길이 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수시로 차선을 만든다. 왼쪽일 수도 오른쪽일 수도 있다. 모래사막에 도착하자 수시로 빠진다. 바퀴를 4륜구동으로 바꾸고 전·후진을 하며 핸들을 갑자기 틀어 방향을 바꾸기도 하며 안간힘을 다해 길을 찾으며 달렸다. 까마득히 보이는 산은 나무 한 그루 없이 검은 돌산으로 풍화돼 모래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런 중에도 생명이 보인다. 야생 가젤무리가 두려움으로 하늘로 솟구쳤다 내려오기를 몇 번 하고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게르 캠프에 여장을 풀고 한 팀은 낙타를 타고 한 팀은 모래산(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경계인이다
썰매를 매고 모래언덕(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모래언덕을 한번 쳐다보고 높이를 가늠했다. 무려 200m는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경계인이다. 가느냐 안 가느냐,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가파른 곳은 세 걸음에 두 걸음은 밀려 내렸다. 경사도 있고 높이도 있으니 보폭은 30cm 정도였다. 풀코스 마라톤을 뛸 때가 생각이 났다. 포기하고 싶은 때면 문득문득 포기할 이유를 찾는다. 포기한 사람에겐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니까. 나는 모래산 너머의 세상이 궁금했다. 지루하지만 오르고 또 올랐다. 저 멀리 내 앞엔 젊은 여자들 일행이 오래도록 머무르고 있는지 오르고 있는지 가늠은 안 되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이는 내게 용기를 줬다. 모래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젯밤에, 아니면 조금 전에 모래톱 날을 갈아 놓았다. 무엇이 어떻게 했을까? 바람이 날카롭게 갈아 놓는다. 무슨 목적이 있을까? 내가 그 목표일 수도 있지. 나는 경계인이 되었다. 정상에 섰다. 정상의 톱날을 밟고도 두려웠다. 모래산 너머는 그리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겠다. 바람은 간간이 모래현을 타고 톱날을 세운다. 바람이 타는 모래현은 모래 물결이리라. 적막으로 작은 바람이라도 모래현을 타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옥으로의 유혹 같기도 했다. 나에게 모래산을 오르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꿈을 이루고 확인하는 과정이다. 못 오를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목표다. 누구에게 모범이 되겠다던가 자랑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것을 자랑삼아 살지 않는 것처럼. 노력하는 것만으로 나는 성공이다. 오를까, 포기할까의 사이에서 경계인이 된다. 오르는 것으로 결정하여 완전의 결과를 얻었다. 아내에게 올라오지 말라고 얘기하고 혼자 올라갔다 내려와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모래산을 오른 아내가 존경스럽다. ‘그런 면이 있구나’ 생각이 든다. 아내를 기다리느라 낙타를 타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좋다. 밤중에 화장실을 다니며 하늘을 본다. 은하수가 쏟아진다. 바람도 있다. 우리의 흔적을 지우고 모래산의 날을 세우고 있겠다. 모래톱을 연주하겠지. 반디불이가 보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사막의 등줄기를 확인하다
오늘은 되돌아가는 과정의 첫날이다. 우리는 특별한 예우를 받고 싶지 않아 돌아갈 때는 뒷좌석에 타기로 했다.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산맥을 넘는 다른 코스였다. 갈 때 사막을 달리며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눈앞이다. 서서히 큰 산이 풍화되어 암석이 되고 암석이 돌로, 돌이 모래로 되고 있었다. 이렇게 방치하면 결국 이곳은 모두 황폐한 사막으로 될 것이다. 정말 끔찍하다. 보고 지나가는 사람 중에 어느 누구도 걱정하지 않고 있다. 보고 느끼지 못하는데 못 본 이는 말이 없을 것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리도 없지만 문제의식은 가져야 한다. 차량은 조금만 요철이 있어도 사람을 들었다 놓는다. 앞차가 일으키는 먼지로 뒷차는 형체가 사라진다. 물론 기사가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고 차선도 바람이 지나가지 않는 곳을 택하지만 마스크를 써야 할 지경이다. 어제 올랐던 모래산은 멀어져만 갔다. 간밤의 바람이 모래산을 어찌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사막을 내달렸다. 간간이 동물의 뼈가 보인다. 멀리 신기루가 생겨 강이 보이고 초원이 보이고 호수가 보인다. 이동 중간지점에서 세계 최대 공용화석 발굴지 반얀작에 들렀다. 지형이 풍화작용으로 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낙타 사자 독수리 버섯 등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안내인이 숨겨두었다 보여주는 공룡의 뼈도 볼 수 있었다. 공룡알도 있다는데 우린 보지를 못했다. 반경 8km나 되는 넓은 지역이 공룡화석 발굴지로 지정돼 있다. 일행 중 어린 학생이 식중독이란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안쓰럽다. 여행객 중에서 하나, 둘 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설사가 시작됐다. 다시 게르(Ger) 숙소에 도착했다. 그동안 타고 다녔던 승합차는 이별이다. 서로 감사를 표했다. 좋은 이미지의 캠프다. 게르숙박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또 추억에 꾹꾹 담아두어야겠다. 숙소에 익숙해진 우리는 각자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많은 사람이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추억을 담은 몽골 여행
타고왔던 버스로 바꿔 탔다. 기사가 성실하고 운전 실력도 탁월해 보인다. 울란바토르로 오는 중에 귀한 돌을 주웠다. 잘 연마해 보석으로 만들어야겠다. 우선 무사히 통관이 돼야 하는데! 울란바토르 시내는 붐볐다. 좌·우 운전석 차량을 함께 운행했다. 전통민속공연을 관람했다. 낙타를 감동시켜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마두금의 음율은 특이했고,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동물까지 감동시킨다니 나도 따라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가성으로 부르는 민속가수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괴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공연 모두가 깊고 무게감이 있게 느껴진다. 오늘은 호텔 숙박이다. 역시 호텔이 편하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 있다. 푹 쉬어야겠다.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대암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이곳 교민들과 대사관이 관리한다고 하는데 깨끗하고 정리도 잘 돼 있다. 몽골 국민이 대단히 존경하는 분이라고 한다. 이런 분들이 정말 애국자다. 서울의 남산 같은 자이승 전망대를 올라 울란바토르를 한눈에 내려다 보았다.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일정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와 보니 공항 면세점은 작고 상품도 다양하지 않다. 인천서 출국할 때 보았던 백팩을 혹시나 하고 찾았으나 없어 포기했다. 미리 사둔 낙타털 케시미어 양말로 만족해야겠다. 5박 6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몽골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웠다. 좋은 추억을 오래 간직하련다. <끝>
김승수/설악신문/서울 주재원 '한국산림탄소협회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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