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식당에 갔더니 다행히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코드가 있었다. 게르 안에는 충전시설이 없다 보니 모두 여기서 충전하느라 야단이었다. 아침을 먹고 돈뜨고비의 차강소브라가로 향했다. 몽골의 그랜드케년이라는데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멀리 더 높이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보니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수억 년을 바다 밑에서 잠자다 육지로 융기하여 사슴이나 낙타의 형상을 하고, 인간이 부러워 모양이라도 닮아보려 했던 형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서 있다. 계곡 아래서보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아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려오는 길에 몽골 모델인듯한 여인이 아름다운 전통의상 ‘델’을 입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델의 여인’과 사진도 찍었다.
웬일인지 아내는 물을 마시려 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게 싫어서란다. 차가 달리다 멈추면 그곳이 화장실이 된다. 남자는 차에서 더 멀리, 여자는 반대편으로 양산을 들고 통로나 둔덕으로 간다. 아, 이거였구나. 몽골 여행에서 여자들은 양산이 필수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화장실 가는 것을 “남자는 말 보러 간다, 여자는 꽃 따러 간다”고 하니 말도 예쁘다.
배가 출출해지는 걸 보니 점심때가 된 모양이다. 식당에 여러 종류의 라면이 준비되어 있었다. 현지인들은 인덕션에 직접 라면을 올려놓고 끓여 식사를 했다. 한국 라면이 비싸고 잘 팔린단다. 점심 식사 후에 독수리의 계곡 율리암에 도착했다. 우리는 대형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측면 경사는 정말 위험했다. 징기스칸 나라에 왔으니 나도 징기스칸처럼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고 싶은데 마부를 대동하다니, 볼품없이 각자 말을 타고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무용담을 얘기하고 담력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을 내려서도 얼만가를 걸어 들어갔다. 주변 기온이 서늘했다. 계곡 안쪽은 한여름에도 아주 두꺼운 얼음이 있었다. 사막의 열기를 계곡에 놓고 나오면서, 지류 계곡을 올라갔더니 작은 해당화꽃이 핀 숲이 있었다. 두 송이가 달린 가지를 꺾어 무릎을 꿇고 정중히 아내에게 헌화했다. 나무가 없고 황량한 곳에서 작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꽃이 행복을 만들었다.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치러진 즉석 이벤트였다. 이 또한 나의 부지런한 걸음의 덕이리라.
하루 일정이 끝나고 부지런히 숙소로 향했다. 저녁노을을 받아 붉어지는 캠프에 도착하니 간밤의 숙소(Ger)와 달리 잘 정돈되고 준비된 숙소였다. 웬만한 호텔 못지 않았다. 식사 후 식당에서 생일축하와 소개인사를 겸한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날 때 어린 학생들이 동행해 염려도 되고 의아했는데 힘든 내색도 없이 그 먼 길을 함께하며, 할머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악기를 준비하고 연습까지 해서 현지에서 연주와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모처럼 술도 한 잔 했다. 일찍 자고 한밤에 일어나 은하수를 보았다. 그 시간을 꾹꾹 눌러 추억에 담았다. <계속>
김승수
설악신문 서울 주재원
한국산림탄소협회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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