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지인이 속한 단체에서 주관한 인문기행프로그램을 따라서 몽골을 다녀왔다. “인생의 고비(苦悲)에서 고비(高飛:Gobi)를 만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5박 6일 일정으로 남(南)고비를 여행했다. 몽골은 우리나라의 7.5배 정도인 156만4천㎢의 면적을 차지하지만 인구는 340만명에 불과하다. 공화국이며 중앙아시아 북방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화폐는 투그릭(Tugrik: 한화의 2.6배)을 사용하고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비행시간은 3시간 반이 걸린다. 국민소득도 낮고 못사는 나라지만 징기스칸의 후예로 역사상 손에 꼽는 대제국을 거느렸던 민족이다. 오래전이지만 외국 건설 현장을 돌며 근무할 때 이라크의 사막에서 일한 경험이 있긴 했다. 사막 특유의 황량함은 물론이고 밤과 낮의 심한 일교차로 고생했던 기억도 났다. 그렇게 한때 영화를 누렸던 몽골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컸다.
늘 그렇듯이 여행은 떠나기 전 준비부터 설렌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했다. 여행사에 여권 사본을 보내면서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을 보내고 말았다. 추억이 될까 해서 보관해둔 무효여권이었다. 잠깐이지만 내 인생도 철 지난 무효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허탈감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나이와 건강 때문에 일행에게 혹시라도 민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앞섰고, 그동안 주로 했던 배낭여행과 달리 테마여행이라 낯선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의 사막여행이다 보니 기대가 컸다.
첫 날부터 고비(苦悲)를 만나다
출발 당일 새벽 일찍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벌써 동은 터 있었다. 4시 17분 첫 공항리무진버스를 타려고 20분 전부터 나와 기다리다가 정류장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이번 여행을 인솔하는 여행사 직원이다. 출발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봤기 때문에 금방 알아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버스가 도착했다. 첫 차 임에도 몇 좌석 남지 않았다. 중간정류장부터는 좌석이 없어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코로나가 끝난 탓인지 여행 성수기도 아닌데 여행객이 많다. 인천공항 2터미널의 약속장소에 팀 중 제일 먼저 도착해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에서 가볍게 쇼핑까지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기내식도 흡족했다. 이륙한 지 3시간 반쯤 지나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공항은 소박했다. 알고 보니 우리 부부가 제일 연장자였다. 잘 봐달라는 의미로 궁리 끝에 일행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렸다.
공항을 벗어나니 이내 풍경이 달라진다. 차도는 비포장이라도 최소한 관리가 잘 된 도로려니 생각했다. 편도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시간을 넘기며 달리더니 기우뚱하며 노선을 벗어나더니 이제는 사막을 내 달렸다. 사막은 원래 비가 잘 내리지 않지만 요즈음은 온난화로 인해 가끔씩 비가 내린단다. 웅덩이에는 물이 고였고 풀도 자라고 있었다. 하늘은 흐려있고 멀리서는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한다. 얼마나 갔을까, 얕고 넓은 곳에 물웅덩이가 있으니 바퀴가 빠져 헛돌기만 했다. 대형 차량은 일행이 함께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쁜 도로에서는 운전하는데 애를 먹는다. 목적지를 바꾸기로 했다는 가이드의 말이 이어지고 결국 우리는 방향을 돌렸다. 갑자기 목표를 잃은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저녁은 작은 마을에서 해결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지며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가 가는 길은 랜드마크가 없는 허허벌판 사막뿐이었으니 네비게이션이 있는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찾아가는지, 제대로 가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사막에서는 기사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라 했으니 냉가슴만 앓는 수밖에. 숙소에 도착할 즈음엔 와디(계곡)를 지나야 하는데 차량이 커서 위험한 상황이 연속되며 통과가 어려웠다. 이렇게 우리는 숙소 찾아 삼만리행을 했다. 한밤중인 11시경에 숙소에 도착했다. 모험 여행이라 생각해 고생은 별것 아닌데 위험이 문제였다. 목숨을 건 여행은 여행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몽골에서 첫날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게르(Ger)와 첫 만남이었다. 사방이 어둠이었고 충전기는 아예 없고 화장실이나 샤워장은 기능을 잃었다. 남자들이야 참고 자겠지만 여자들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한밤에 화장실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흐렸던 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졌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밖에 나가 캠프를 둘러보다 토끼도 만나고 도마뱀도 만나고 멀리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위에 함께 해주려는 듯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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