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주택 4가구는 길과 길 사이에 위치해 갈림길에서 쏟아져 내려온 빗물이 한데 모여 침수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
8월 10일 태풍 폭우, 처참했던 상황
태풍 ‘카눈’으로 인해 시간당 9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월 10일, 속초 곳곳이 잠겼지만 중앙초등학교 뒤 저지대 주택은 유독 심각했다. 상가 1동, 4가구가 물에 잠겼다. 4가구 중 두 집에 살고 있는 김원구·용구 씨 형제는 빗물이 솟아오르는 하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우비를 입고 안간힘을 썼다. 빗물은 허리까지 차올랐고, 90세 노모는 구급대원 등에 업혀 구조됐다.
이후 김용구 씨는 모텔과 달방을 전전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침수된 집의 물이 빠지고 건조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태풍 이후로도 속초는 8월 내내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고, 20일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놓았던 짐들은 곰팡이가 슬어 쓸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버리고 사비를 들여 냉장고와 세탁기 등 급한 제품부터 구매했다. 원구 씨도 쓰던 농을 버리고 새로 들였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했지만, 여전히 집안에 벤 흙비린내는 어찌할 수 없다.
“그날 우리 동네는 저수지나 다름없었어요. 빗물과 아파트 공사장에서 내려온 흙이 섞여 떠밀려와 동네가 노랗게 변했었죠.”
사람이 만든 침수 지대
원구 씨는 집 4채가 동시에 잠긴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왔을 때도 이렇게 잠기지는 않았다고 한다.
번영로 97번길 부근에 위치한 원구 씨 집은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공동주택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사와 이 동네에서만 50여 년을 살며 마을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40여 년 전 집을 새로 지어 자리 잡았고, 과수원이었던 집 주변에는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옛날에는 주변이 다 과수원이고 (번영로 97번길)도로도 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땅에 흡수되거나 빗물이 여러 갈래로 산개하면서 영랑호 쪽으로 빠져나갔어요.”
시에서는 수십 년간 지대의 변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축 심의와 허가를 반복하고, 그에 따라 아파트들이 꾸준히 들어서면서 침수된 4가구의 위치가 인위적으로 저지대가 되었다는 것이 원구 씨의 생각이다.
시간이 흘러 길 한가운데 위치해버린 원구 씨의 집을 비롯한 4가구는 비가 올 때마다 공설운동장, 이편한세상, 영랑호아파트 등 갈림길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한데 모여 ‘저수지’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이곳에 침수피해가 특히 심했던 이유는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무너져 내려온 토사가 배수관에 들러붙어 빗물이 잘 흘러가지 못한데다, 떠밀려온 진흙들이 가장 낮은 곳인 네 집의 주변과 마당, 집안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다음날 저지대 마을에는 가장 먼저 살수차가 와서 물을 뿌리며 토사부터 쓸어내야 했다.
“이주밖에 답이 안 보여”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시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대책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침수 사태를 통해 단순히 더 크고 깊은 배수관을 묻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올해 갑작스레 허리춤까지 쏟아졌던 폭우처럼 자연재해 또한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계산할 수 없다.
저지대 주택 주민들은 비만 오면 노이로제가 걸린다며 재산 피해에 정신적 피해까지 더해져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기후는 급변해가고, 올가을에 태풍이 또 오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두려운 이들은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지 깊은 고민 중이다.
원구 씨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의 특정 지역이나 장소의 용도가 바뀌는 등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기존 저소득 거주자들이 내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지만, 최근 급격한 변화와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속초에서, 특히 금호동 저지대 주택 주민들에게는 깊이 공감 가는 키워드일 수밖에 없다.
“도시가 팽창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들은 생길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알게 모르게 천천히 긴 시간 동안 저희처럼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누적된 행정의 결과들이 조금씩 나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록적 폭우가 내린 지난 8월 10일, 금호동 신축아파트 부근 저지대 주택가에 떠내려온 흙탕물로 인해 침수피해를 입었다.
정채환 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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