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모이신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도민 여러분! 차마 안녕하냐고 묻기 어려운 오늘입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속초 청봉초에 있다가 9월 1일부터 양양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된 교장 김동수입니다. 우선,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홀로 고민하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서이초, 호원초, 신목초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서 죄송한 모든 선생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8월은 우리 모두에게 유난히도 뜨거운 여름이었고, 한없이 가슴 아팠던 여름이었습니다. 7월 18일 그날 이후, 토요일이면 뙤약볕 내리쬐는 광화문 아스팔트 길에서, 국회 앞마당에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선생님들의 피맺힌 외침은 물방울로 모여, 강물로 흐르고 바다가 되어 오늘 이렇게 커다란 파도로 물결치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에 저도 지난 토요일 뜨거운 햇살 내리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아스팔트 바닥에 앉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화도 나고,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선배 교사로서 오늘 학교 현장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미안하기만 합니다. 후배 선생님들 정말 미안합니다.
10여 년 전 저는 이곳 도교육청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맡은 업무가 인성인권이었습니다. 학교 건 어느 곳이건 민원 업무는 누구나 기피하는 일입니다. 교육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민원은 인권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민원실 주무관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온 민원을 들고 이리저리 애타게 찾다가 마지막에 오는 곳이 인권담당 장학사인 저였습니다. 경력이 오래된 저도 그 민원을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엔 세 시간 넘게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팔도 아프고 전화기가 뜨거워져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전화로 해결되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담임이 마음에 안 드니 바꿔달라, 학급을 교체해 달라, 학교를 옮기게 해달라’면서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끝없이 요구하는 사람은 정말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맨몸으로 감당해 온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오직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우면 된다는 그릇된 교육관으로 무장한 일부 학부모들을 상대하며 견뎌내는 대한민국의 선생님들 모두는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지난 8월 26일 제6차 전국 교사 집회 때 온라인으로 전북에서 오신 교직 12년 차 소담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배 교사로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경찰청장에게 묻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생님들의 억울한 사정을 밝혀달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리지 않습니까?이 나라 국회의원들에게 묻습니다. 법이 제 역할 못 하니 제발 고쳐 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인가요? 너무 유능해서 두 번씩이나 교육부총리 하시는 분께 묻습니다.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마음 놓고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는 외침이 그렇게 부당한 일인가요? 견디다 견디다 못해 우린 우리 책임 다할 테니, 제발 당신들이 할 일 해달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파면이니, 해임이니 하고 겁박할 일인가요?
공부 하나 잘해서 올라간 그 높은 자리에서 머리로 만든 무슨 무슨 대책을 일방적으로 내려보낼 게 아니라, 현장으로 내려와 가장 낮은 곳에서 절절하게 가슴 아파하는 저 여린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뉴욕 맨하탄 911 메모리얼 벽면에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지라도 그대들이 기억에서 지워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는 수많은 소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다짐하는 자리이며, 우리 교육이 새롭게 바로 서는 시작의 자리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 학부모님, 그리고 도민 여러분! 우리 함께 손 맞잡고 비를 맞읍시다. 다시 한번 먼저 가신 선생님들의 명복을 빌며, 이만 추도사를 마치겠습니다.
김동수
양양초등학교 교장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