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발견, 소야팔경을 아십니까? 지역의 특성과 시대적 미학에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여 이름 붙인 팔경이 지역마다 있다. 속초에는 소야팔경이 있다. 소야팔경은 소야천을 중심으로 한 인근의 절경지를 말한다. 노리교 옆 과거 노학동사무소(현 농산물품질관리원) 길가에 속초문화원에서 1982년에 세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선생 추념비’가 있다.
삼연 추념비 뒷면에 소야팔경 기록이 있다. 삼연 김창흡(1653~1722)은 조선 후기 학자이며 시인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삼남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이다. 비문에 “당대의 뛰어난 학자요 시인이었던 삼연선생은 환해풍파(宦海風波)가 싫어 내설악에 들어와 (중략) 삼연이 간지 사반천여년, 산천은 변하였으나 그 정이 그리워 그의 비폭층담(飛瀑層潭)과 소야팔경을 새겨두고 그를 추념하고자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서 소야팔경, 주교어화(舟橋漁火), 온정조하(溫井朝霞), 청대화병(靑垈畵屛), 청호마경(靑湖磨鏡), 논산조양(論山朝陽), 노동명월(蘆洞明月), 이동백설(梨洞白雪), 조도귀범(鳥島歸帆)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삼연집(三淵集)에서 소야팔경에 관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학술정보시스템에서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검색해도 소야팔경의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설화와 전설을 채록한 구비문학이 여럿 있을 뿐이다.
그런데 채록내용 기록도 서로 다르다. 속초문화원 ‘속초지역 구전설화집(1990) 75면 [전설32] 소야팔경<박익훈, 남 77, 교동, 1992.4.21.>은 “소야팔경은 뭡니까. 처음에는 기록을 찾아내지 못해서 떠도는 얘기를 가지고 ‘속초귀범’을 ‘조도귀범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틀린 얘깁니다.”라고 했고 근거로 ≪면세일반(面勢一斑≫을 제시했다. 이어 “김창흡이란 이가 지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없고”라고 했다. 또한 79면 [전설33] 소야팔경<장헌영, 남, 54, 중앙동, 1981.4.27.>에는 노도귀범(鷺島歸帆)은 영금정 새섬으로 소야팔경의 마지막이라 했다.
필자는 소야팔경의 유래를 찾다가 새로운 채록을 발견했다.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소야팔경(所野八景)(1), 코드번호:G002+AKS-UR20_Q_0423_1_F_074, 테잎연번:[속초시 설화 74], 채록지:노학동 80번지, 채록자:최임규(동우대 교수), 구연자:이종율, 출전:한국구비문학대계 2집 4책, 출전페이지:229-232로 기록되어 있다. 마침 구연자의 아들 이선우씨는 필자의 지인으로 부친이 그해 71세로 별세하셨다고 했다. 메터데이타의 채록일은 1981-05-07이다. 앞서 [전설33]과 채록한 기록날짜가 유사하나 구연자의 연령차가 있다.
이종율 구연자는 소야팔경에 척산야침(尺山夜砧)과 도원홍우(桃源紅雨)를 추가로 언급했다. 최임규 교수가 채록한 또 다른 코드번호:G002+AKS-UR20_Q _0424_1_F_081, [속초시 설화 81]에서 구연자:김봉춘은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이 소야팔경을 지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들 내용은 속초문화원 간행물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삼연 김창흡 선생 추념비 때문에 실증적 문헌 없이 삼연이 소야팔경을 지었다고 굳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지금은 이목리에 배꽃도 없다. 그러니 구전설화로 당시를 공감하면 족하지 않은가? 다만 속초문화원에서 채록한 구전설화를 문서화할 때는 깊이 있는 연구와 기록의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다.
이제 끝으로 필자가 소야팔경의 뜻을 축약해 본다. 부월리 옛 이름 주교리의 배다리 마을 고기잡이 불빛은 주교어화(舟橋漁火), 봄철 온정마을의 더운 우물이 아침안개처럼 피어오르니 온정조하(溫井朝霞), 청대산 진달래꽃이 병풍을 두른 듯 청대화병(靑垈畵屛), 청초호가 거울같이 맑으니 청호마경(靑湖磨鏡), 아침 해 비치는 논산마을은 논산조양(論山朝陽), 노리 갈밭에서 보이는 동해의 떠오는 해와 달은 노동명월(蘆洞明月), 이목동(梨木洞)의 흐드러진 배꽃이 눈처럼 낙화하니 이동백설(梨洞白雪), 만선으로 돌아오는 고기잡이배는 조도귀범(鳥島歸帆), 그리고 밤에 척산에서 들리는 정겨운 다듬이 소리 척산야침(尺山夜砧)과 도리원 붉은 복숭아꽃이 비 오듯 떨어지니 도원홍우(桃源紅雨)는 소야팔경의 덤이다.
최철재
경동대 온사람교양교육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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