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전통적인 합리론에 근거하여 인간만이 자율적 존재로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존재는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서 물질의 자연에서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말하고 있다. 인간 정신에서 분리된 자연은 죽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본다. 인간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를 인간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적 대상이라고 본다. 데카르트는 물질세계는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며 완전한 기계로서 정확한 수학적 지배를 받는다. 이러한 자연관은 생물에게도 적용되어 생명현상의 기계론적 이해를 확산시켰다. 물질과 정신을 각기 구분되는 두 가지 종류의 실체로 간주하였는데, 정신이란 사유능력으로서 인간 이성에 속한 능력을 의미하고, 그 밖의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는 단지 물질의 덩어리로서 기계적 운동만을 하는 일종의 자동기계로 간주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자동기계로서 파악하는 기계론적 이해는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근대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처럼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도 하나의 기계로 보고 단순한 물질에 불과하다는 근대적 인식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과학적·기술적 지배를 정당화하게 되어 인간의 지배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자연을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이용해야 할 수단으로 취급하여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 인간중심주의의 세계관에 뿌리를 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기후변화와 생물의 멸종 등 환경파괴 문제가 심각해지고 인류의 생존이 위협당하면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고, 1970년대에 생태중심주의(生態中心主義) 내지 심층생태론(深層生態論)이 등장하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관계, 인간과 자연을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닌 공존하는 관계로 여기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간의 삶과 자연 생태계가 조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인간은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보존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즉, 생태중심주의는 자연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무생물을 포함한 자연 전체를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여기는 관점으로,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성에 바탕을 둔 생명 공동체임을 강조하며,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평범한 구성원 중 하나로 본다.
이처럼 유기체적 세계관은 인간은 다른 유형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법칙에 순리적으로 따름으로써 자신을 일부분으로 구성하고 있는 전체 생태계와의 조화를 통한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층생태론에서는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속 좁은 자기 자신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극복하고, 자연과 기쁨 및 슬픔을 함께하면서 자기실현의 확장을 꾀하며 더 나아가 자연 세계의 모든 존재와 함께하는 동일화를 통해 개인을 넘어 ‘큰 자기’를 실현할 것을 촉구한다.
에드워즈는 《지속 가능성 혁명》에서 “생태적 설계 원칙은 건축, 사람, 자연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지속 가능성에 이바지하는 생물권의 원칙은 자연이 인간의 모델이자 교사이며,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지식과 영감과 생존의 도움을 부여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생태중심주의 윤리의 대표적인 예로서 레오폴드의 《대지의 윤리》를 들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 윤리가 대지를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비해, ‘대지의 윤리’에서는 인간을 동식물, 물, 바위, 공기 등과 함께 거대한 대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토양과 물, 식물과 동물이 군집해 있는 대지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지의 윤리는 인간을 대지의 정복자가 아니라 대지의 구성원으로 바라보며,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자체를 존중하라고 요청한다. 그리하여 대지의 윤리에서 옳고 그름은 “어떤 것이 생명 공동체의 온전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경향성이 있다면 옳은 것이며, 그것을 보존하지 않는 것은 그른 것이다”라고 정의된다. 생태주의자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덕률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통상의 윤리학과는 달리, 인간과 자연 사이의 도덕률을 확립하는 윤리인 생태 윤리학을 잘못된 자연을 개조하는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계속>
이종식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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