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사이 / 김광규
시인은 오르지 시만을 생각하고/ 정치가는 오르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르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근로자는 오르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르지 법만을 생각하고/ 군인은 오르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르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르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르지 관청만 생각하고/ 학자는 오르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 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 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 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권력과 돈과 착취와 형무소와/ 폐허와 공해와 농약과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는 시간이 괴롭다. ‘묻지 마’라고 이름 붙인 각종 사건들이 하루건너 일어나고, 태풍과 비로 인해 벌어진 자연재해와 인재가 합쳐진 재난 현장을 보는 일은 눈도 마음도 어지럽게 만든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소위 ‘민생’은 없고 ‘편 가르기’만 하는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정치판 소식은 가뜩이나 무더운 밤에 염장을 지르기 일쑤다.
그런 짜증 나는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만난 김광규 시인의 ‘생각과 사이’라는 시는 잠시 울화를 식히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반복과 병치가 계속되는 위의 시 ‘생각과 사이’는 어떻게 보면 읽기 어려운 시에 속한다. 그러나 지루함을 참고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자.
1연에 언급된 시인, 정치가, 경제인, 근로자, 법관, 군인, 기사, 농민, 관리, 학자는 결국 세상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얼마 전까지, 우리는 흔히 자기가 속한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세상이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범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일’만큼 ‘관계’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일 처리 방식은 옛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아중심적이다. 정치가는 세상 모든 일을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관리는 오로지 절차와 형식에 치중한다. 아직도 자신의 생각과 방식이 우선이다. 그러니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세상 안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이 끼고 있는 색안경의 색깔로 재단한다. 우리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 며칠 뉴스판을 어지럽게 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도, 김홍도 장군의 흉상 철거도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진 세상에 사는지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내 생각과 다른 이의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생각이 옳다고만 주장한다. ‘사이’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와 정치 사이, 법과 국민의 상식 사이, 행정과 시민의 욕구 사이, 노동과 생산의 사이를 살피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하려는 이는 리더의 자격이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정한 리더는 새로운 정책을 결정하거나, 지난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때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의 ‘사이’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이제 자신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지 말자.
김종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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