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만에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재심이 잇따라 개시되어 무죄 판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8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열린 납북귀환어부사건 재심에서 모두 8명이 무죄를 선고받아 54년 만에 용공 범죄자의 굴레를 벗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1969년 5월 28일 귀환해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대동호 선장 김재수(81)와 이미 고인이 된 대동호 선원 이일성·김재천, 길성호 선원 유철일, 청길호 선원 최윤필, 왕양호 선원 오원재·이창구, 어제호 선원 이봉남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 8인은 1968년 10월말과 11월초에 명태잡이 조업에 나갔다가 북에 납치·억류되어 다음해 5월 28일 귀환해 불법구금되어 가혹행위를 당하고 허위자백을 강요받았으며, 재판에 회부되어 반공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사찰기관의 감시와 사찰에 시달리고, 연좌제 피해까지 입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재심 개시 후 첫 공판으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검찰 구형과 변호사 변론, 선고까지 한꺼번에 이뤄졌다. 재심 신청자 고 유철일씨 부인 강○○씨는 “지난 세월은 저에게 가시밭길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그 아픔이 얼음 녹듯 사라졌다”며 울먹였다. 강씨는 지난해 진실화해위 구술조사에서 남편 유철일씨가 “간첩이라는 소문이 나서 어렵게 살다가 자살하였다”고 진술했다.
이날 재심 대상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대동호 선장 김재수(81)는 “피고인 김재수는 대한민국 해역에서 조업을 하고 있었고, 무궁화호가 옆에 있었던 것으로 대한민국 해역에서 조업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음에도 구타와 강압 회유에 의하여 월선조업을 한 것으로 되어 있어 실형을 받고 1년 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나왔다”며, “50여년이 지난 지금이나마 재심이 이뤄져 무죄가 되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떳떳하게 살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오원재씨 아들 오○○는 “일산에서 왔다. 아버님 돌아가신 지 6년째인데 살아계실 때 이런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셨다. 그래서 아침에 납골당에 가서 아버님의 억울함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인사드리고 왔다. 살아계신 어머니께 좋은 결과를 말씀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뿐만 아니라, 무죄구형을 한 검사도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속초지청 모용민 검사는 무죄구형을 하면서 “이번 재판을 통해 피고인과 가족분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피고인들은 북한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돌아왔지만 환영받지 못하고 여러 국가기관을 거치면서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인권이 무시되고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 50여년 전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못하고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무죄를 선고한 김찬년 판사는 “제가 법정에 앉아있는 분들의 입장이라면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화가 나고 항의를 해도 모자랄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를 느끼고 가르침을 받는 것 같다. 앞으로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 고생 너무 많이 하셨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판사는 “그동안 억울한 재판 받으시고 고초 겪으시고 가족분들까지 수많은 고통을 겪으신 걸 진실화해위원회 결정문을 통해 확인했고, 많이 공감을 했다. 너무 늦었고, 단순히 무죄라는 말 한마디뿐이지만 이 한마디가 그동안 가슴에 쌓이셨던 아픔을 씻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앞서 지난 7월 5일 속초지원에서는 1969년 5월 28일 귀환한 수진호 선장 황봉석과 선원 이남익·장두현, 영창호 선장 이민하, 용명호 선원 김대호·정복봉 등 6명이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8일 출석하지 못해 무죄선고를 받지 못한 영창호 김재문(88)씨는 부인 사망으로 한 차례 선고기일을 연기한 끝에 지난 7월 19일 속초지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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