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의 개념은 꽤나 포괄적인데, 흔히 TV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불건전한 요소가 포함되거나비상식적 전개를 보이는 드라마를 말한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막장은 실제 탄광 속 막장이다. 탄광 광부를 안 해본 사람은 혹시 이해가 어렵고 설마 할 수 있을 것이다.
1973년 육군 오뚜기부대(8사단)에서 3년을 복무하고 병장 만기로 제대하였다. 6살 때 조실 부모하고 외갓집 외할머니댁에서 자랐고, 부모로부터 땅 한평 물려받지 못한 처지라 농사도 지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회사나 직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집도 절도 부모도 없는 몸이라, 흔히 말하는 줄도 빽도 없는 지라 어느 하나 조건이 맞지 않았다.
백수로 몇 개월을 무료하게 지내다 군 동기와 우연히 연락이 되어 황지(지금의 태백시)에서 탄광의 막장 광부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입적하게 되었다. 당시 필자가 광부로 입적한 광산은 서울 7표 연탄의 전신인 황지어룡광업소 서룡항이란 광산으로 1.700m가 넘는 굴속 막장이었다.
그 시절 연탄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땔감이었다. 정부에서는 석탄 증산이라는 효과를 달성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1975년 순직 광부를 추모하기 위해 ‘산업전사위령탑’을 건립하는 등 광부들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행위를 하였는데, 이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광부를 활용했다는 증거들인 셈이다. 위령탑을 건립하면서 대통령이 쓴 친필휘호는 역시 애국과 석탄 생산을 지속적으로 연결 짓는 내용이었다. 400여 개 광산에 5만명을 헤아리는 종업원들은 영광된 사명을 어깨에 메고 있는 고귀한 산업전사들(1975년 11월 25일)이라는 문구를 담고 있었다.
광부로 입적하여 첫날 출근한 시간은 병반이었다.(광부의 근무시간은 갑을병반으로 나뉘는데, 갑반은 오전 8시~오후 4시, 을반은 오후 4시~ 밤 12시, 병반은 밤 12시~다음날 오전 8시 근무였다) 광부의 복장은 장화, 작업복, 안전모에 허리에는 안전모 랜턴을 연결한 배터리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광산전용 무거운 벨트가 있었다.
광부들의 한결같은 트라우마는 굴속에서 언제 어느 때 붕락사고로 죽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머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다.
처음 광부로 출근하는 날, 밤새 뒤척이다가 밤을 지샜다. 도시락을 허리춤에 차고 집을 나서는데 한여름 장맛비가 쏟아졌다. 출석을 마치고 광차에 나눠 타고 굴속으로 향하는 시간은, 지금도 자다가도 생각하면 몸서리치는 시간이었다. 죽을 수 있다는 무서움에 세상을 비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광부의 임금은 생명수당과 병반수당이 포함되어 공무원 급여보다 1.5배 정도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어려운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광부로 나섰다. 당시 황지에는 광산경기가 활발하여 개(견)들도 만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읍소재지 인구가 시 인구보다도 많았으며 결국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광부들은 한데 모여 도시락을 먹는데 어느날 갑자기 어둠 속에서 쥐 너댓마리가 우리 주변으로 몰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서 개탄을 던져 쫓았다. 그 순간 누군가 안전모를 쓴 내 머리를 삽자루로 내리쳤다. 놀라 쳐다보니 선산부 60대(사끼야마/일본어)가 한 짓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왜 때리느냐고 대들었다. 결국 멱살잡이 싸움이 벌어졌는데 팀원 6명 중 내 편은 한 명도 없었다. 추후 내 또래의 친구가(당시 피신해온 운동권 대학생)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하는 말이 항(굴속)에서 선산부는 감독직원보다 더 쎈 사람이며 굴속에서는 쥐들을 함부로 막 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을 때 쥐들이 모여들면 선산부부터 밥을 한술 떠서 쥐들에게 “드시오!”하고 던져주고, 나머지 후산부(아다매끼/일본어)들도 한 수저씩 던져주곤 했다.
쥐들이 주변에서 함께 먹다가 갑자기 깜짝 놀란듯 도망을 치면, 모든 광부들도 그곳을 옮겨 다른 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면 잠시 후 어김없이 우리가 밥을 먹던 자리의 천정에서 탄 덩어리가 뚝뚝 떨어졌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측의 신(神)과 같은 쥐들을 홀대하지 않았다. 쥐라는 동물은 본능적인 느낌으로 어떤 위험을 미리 인지하기 때문에 굴속에서는 광부들이 쥐들을 신 모신 듯 하는 것이었다.
광부 생활 3개월쯤 되었을 때다. 도시락 점심을 먹기 직전인 오전 11시 40분쯤 항(굴) 밖에서 대형 컴프레셔로 직경 약 2.5Cm의 쇠파이프를 통해 항내 채탄 막장까지 365일 보내주던 공기가 갑자기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조는 그날 6명이 채탄작업을 했는데 채탄 굴 어느 중간지점에서 굴이 무너지는 붕락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비상사태였다. 6명 중 3명은 1년 미만의 경험이 별로 없는 광부였다. 선산부 조장과 2명은 광산 채탄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침착한데 나를 포함한 3명은 울며불며 몸부림치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선산부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너희 놈들 자꾸 지랄하면 죽여버린다” 하며 자기 지시에 따르라고 하더니, 시계를 압수하고 안전모 해드랜턴도 모두 압수하여 선산부(팀장)를 제외하고는 꺼버렸다. 그리고 도시락도 압수하여 반찬은 전부 탄가루에 쏟아 못 먹게 밟아버렸다. 팀장은 혼자 시계를 보며 식사 때가 되면 일반 도시락이 아니고 두 끼 정도 먹을 큰 밥통을 6등분하여 나눠 먹었다. 시계를 압수한 이유는 각자 시간을 확인하게 되면 더 초조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이고, 반찬을 못 먹게 탄가루에 묻어버린 이유는 염분이 많은 반찬을 먹으면 심한 갈증으로 인하여 물을 많이 먹게 되는데 물이 부족할 것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선산부 팀장은 소변이 보고 싶은 사람은 비닐봉지나 어느 방법이든 받아놓으라고 알려줬다. 물이 없을 때에 대비한 비상대책이라고 했다. 6명의 도시락은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나눠서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뒀다. 이날 이후 우리는 9시간을 갇혀 있었다고 한다.
막장에서는 개미굴처럼 채탄을 마친 폐 채탄굴이 많다. 폐 채탄굴 입구는 커다란 동발나무로 광부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얼기설기 대충 막아 놓았다. 이곳에서 가스 폭발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됐다. 이런 사고의 원인은 채탄 작업이 다 끝난 곳은 광부들이 들어가지 못 하도록 금지했는데 규정을 어기고 흔히 용변을 보려고 들어가서 굴속에 각종 가스가 차 있는 것을 모르고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 폭발하여 인명 피해가 발생하곤 했다. 다행히 내가 광부로 일하던 광산에서는 그런 사고는 없었다.
무척이나 두렵고 무서웠다. 부모님이라도 계셔서 광부는 절대 안 된다고 말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수십 번 마음속으로 발버둥치는 아쉬움을 기억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탄광의 광부가 되기는 솔직히 무척 싫었다.
광부로 취업해서 출근하던 첫날 꿈을 꾸었다. 하얀 소복을 한 여자가 비바람을 맞으며 철길을 걷고 있는 꿈이었다. 몇 개월 후 선배광부들에게 들은 얘기지만 좋은 꿈이라고 했다. 병반(밤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근무)으로 컴컴한 밤에 탄광회사로 출근하는데 비바람이 을씨년스럽고 심하게 몰아쳤다. 정말 몇 번이나 포기할까 망설였다. 그랬던 내가 3년 광부가 되었었다.
연승원
속초농협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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