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당국의 사찰과 탄압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집중되었다.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지 10년이 훨씬 지났어도 생활이 안정되어 있지 않거나 직업이나 거주지를 자주 바꾼 피해자들은 대부분 요시찰 A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승운호 선원의 1985년 카드 기록에는 “월 30여만원의 수입으로 270만원의 전세방에서 4인 가족이 빈곤한 생활을 하며 이웃과의 유대가 없고, … A급으로 시찰함이 가하다고 사료됨”이라고 나온다. 같은 승운호 또 다른 선원의 기록에는 “정부시책에 적극 협조하고 있으나 주거지가 일정치 아니한 자로 A급으로 분류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 생활 상태도 월수 25만원으로 하류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500만원의 1칸 전세방으로 생활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자… A급으로 분류 계속 시찰함이 가한 자로 사료됨”이라고 나온다. 요시찰 A급 승해호 선원 박○○ 기록에는 “본명은 12개월 6일간 납북 억류된 자이고, 하류생활자로서 위해성이 인정되나 …”라고 나온다.
납북귀환어부들은 반공법 위반자로 처벌받아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공안당국은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 주거와 직장이 자주 바뀐 이들이 체제에 불만을 품고 간첩행위를 할지도 모른다고 해 ‘하류생활자’라고 낙인을 찍어 강도 높은 사찰과 감시를 진행했다. 대다수의 납북귀환어부들은 이렇듯 비참한 생활고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월남 실향민 출신 귀환어부의 고단한 삶
납북귀환어부 중에 속초의 월남 실향민 출신은 고향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심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제6해부호 선원 이○○은 귀환 후에는 요시찰 병(丙) 등급이었으나, 1981년 9월 28일자로 납귀 A급으로 편입되었다. 이씨의 납북귀환어부카드 기록에는 “(의견) A급(1983) 본명은 6.25시 부(父)와 월남한 자로 26세 시 납북되어 장기간 억류, 이북에 연고가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라고 나온다. 다섯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월남한 이씨가 20여년 동안 남한에 살다가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북에 아는 사람과 연락해 간첩행위를 할 것’이라는 공안당국의 판단은 거의 병적인 피해망상증 수준이다. 사찰당국은 이씨가 귀환한 지 15년이 지난 1987년에도 여전히 이씨를 ‘위해도가 소멸되었다고 볼 수 없고 순화가 필요한 자’라며 납귀 A급을 유지했다.
이씨의 평가자료서 ‘정보망 활용’ 난에는 ‘○○○ 당 45세를 감시망으로 부식 활용 중 / ○○○ 43세와 주민 ○○○ 40세를 감시망으로 활용 중에 있음 / 15통장 ○○○를 망으로 부식하여 활용 중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망원까지 동원되어 수집된 이씨의 개인사찰 기록은 납북귀환어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은 1972년 귀환 후 계속 속초에서 배를 타다가 생활고로 1981년 7월 서울로 이사를 가서 포장공을 했다. 이때 월급 30여만원을 받아 4인 가족이 전세방을 구해 어렵게 생활했다. 1987년에는 회사 대표가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4개월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다른 회사로 옮겨 월급 27만원을 받고 밤 9시까지 때로는 밤 11시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그해 6월 이씨와 처의 봉급을 합쳐 월 39만원의 수입으로 곗돈 6만원과 고등학생 자녀 학비 등을 내며 최저생활을 했다. 추석을 전후로 7일간 쉬는데, 돈이 없어 고향 가는 것도 포기했다. 그해 10월 집주인이 전세금 100만원을 올려달라 독촉을 해 처가 고향 속초에 가서 돈을 구해 집세를 냈다. 12월에는 회사에서 상자더미가 무너져 가슴,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서 15일간 입원 치료받고 퇴원했다. 처도 몸살로 1주일간 공장에 나가지 못했다. 1988년 2월 이씨는 월 32만원을, 처는 회사 청소원으로 월 12만원을 받았다.
1988년 5월 사장과 불화로 이직을 했지만, 작업량이 과다하여 밤 10시까지 작업을 해 매우 피로하다 한다. 1989년 7월 전세 1,600만원의 집으로 이사했고, 월 40여만원의 봉급으로 생활했다. 그해 10월말 작업 도중 왼쪽 새끼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하고 집에서 쉬다가 12월부터 다시 출근했다. 1990년 4월 병원비 지출이 많아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전세값 인상 요구로 집주인과 다투어 5월경 이사를 할 예정이다. 그해 8월 초 교통사고를 당해 성수동 어느 병원에 1주일 가량 입원해 치료받고 퇴원했다
신원조회에서 탈락한 아들 투신자살하기도
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신원조회에 걸려 취업이나 진학을 하지 못했다고 피해어부와 가족들 다수가 연좌제 피해를 진술한 내용이 나온다. 피해 대상은 납북귀환어부 본인과 직계가족만이 아니라, 형제와 사촌, 조카까지도 있었다. 한마디로 납북어부의 아들과 딸은 태어난 그 순간에 이미 우리 사회의 블랙리스트인 ‘빨갱이 가족’으로 내몰렸다.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부친의 납북귀환사건으로 아들·딸이 다 큰 후에도 진학이나 취업에서 신원조회로 탈락하면, 부친은 자신 때문에 아들딸까지 고생한다고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친의 반공법 위반 때문에 신원조회에서 떨어진 아들이 아버지와 의를 끊는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살한 사례도 있었다. 다음은 보고서에 나오는 연좌제 피해 중 가족들이 겪은 피해 진술 내용이다.
▲승운호 : 김○○(본인) 본인과 아들까지도 반공법 사건으로 취업이 안됐음. / 이○○(본인) 공무원 시험을 본 딸은 신원조회에서 탈락했음. / 이○○(딸) 사촌이 출국에 제한을 받자 부친을 찾아와 원망했고, 본인도 취업하려다 신원조회에 걸렸음. / 김○○(본인) 아들은 취업이 되지 않았고, 경찰이었던 조카는 승진이 안됐음. / 정○○(딸) 남동생이 군 복무 당시 신원조회로 보직이 변경되었음. 가족들이 간첩 집안이라는 말을 들어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음. / 김○○(아들) 본인은 한국전력, 사우디 건설현장 등에 취업을 못했음. 군납업체 근무 중 군부대 출입이 되지 않았고, 1987년에서야 군무원 취업이 되었음. 여동생도 신원조회에 걸려 보건소에 취업을 못했음. 취업 제한의 이유가 부친의 반공법 사건 때문이었음. / 김○○(본인) 누님이 미국에 가려 했지만 연좌제로 못 갔음. / 강○○(딸) 서울 방을 얻어 이사한 후 경찰이 찾아오는 바람에 쫓겨났음. 남편은 신원조회로 공사일도 못함. / 오○○(아들) 본인 또한 부친의 일로 속초경찰서에 불려갔고, 포항제철 산하기관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에서 탈락되었음. 이후 배를 탔지만 부친의 일로 왕따가 되었음. / 조○○(딸) 부친은 문밖 출입을 안하셨음. 딸 집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음. 사위가 군인이라 더 오지 않으셨던 것 같음. 남편이 신원조회에 걸려 준위 시험을 못 보고 제대했음.
▲해부호 : 김○○(아들) 축구선수인 둘째 형이 부친의 일로 외국 전지훈련을 못 간 적이 있었음. / 최○○(아들) 서울에서 1990년쯤 정부청사에서 이발 일을 하려고 지인 추천으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까지 봤으나 신원조회에서 최종 탈락했음. / 변○○(본인) 아들이 직업군인을 하려다 신원조회에서 탈락되었음. / 김○○(본인) 아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까봐 공무원 시험을 못 치게 했음.
▲승해호 : 김○○(본인) 아이들도 본인이 이북에 다녀온 일로 낙인찍혀 어려움을 당했음.
▲탁성호 : 신○○(아들) 큰 배를 타려고 선원수첩을 신청하러 갔는데, 상선은 부친의 일 때문에 못간다고 했음. / 김○○(아들) 형제들끼리 다툼도 있었고, 가족들의 취직, 혼인관계도 간첩으로 소문이 났음. / 배○○(부인) 큰아들이 삼성에 신원조회로 취업하지 못했음.
▲대복호 : 김○○(본인) 아들이 20살 때 경찰대학교 1차 합격하고 2차 면접에서 떨어졌음.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징역을 살고) 사회에 나왔을 때 아들이 나를 찾아와서 ‘아버지는 내 인생에 도움이 안되니 인연 끊읍시다’라고 하고선, 서울 와서 한강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했음. / 이○○(동생) 큰형이 간첩 혐의 관련 조사를 받을 때, 작은형도 자백강요를 받았음. 본인과 작은형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생계가 어려웠고, 작은형은 심적으로 힘들어서인지 공포도 많이 느끼고 건강도 안 좋아졌음. 술도 많이 드시게 되어 29세에 돌아가셨음.
▲명성3호 : 이○○(본인) 막내동생이 경찰대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에서 탈락했음. / 남○○(딸) 본인이 취업할 때 신원보증을 요구했고, 대한항공 면접 통과 후에는 신원조회에서 걸렸음. / 남○○(아들) 논산훈련소 경리단에 지원 입대하였는데, 3일차쯤 교관으로부터 ‘너는 빨갱이 자식 아니냐’는 욕설에 구타까지 당하고 귀가조치 당했음. / 김○○(아들) 사촌형이 경찰이었는데, 연좌제로 승진을 못하고 시험도 못봤다고 했음. 본인도 서울 직장에 들어가려 했는데 서류심사에서 결격사유가 있다고 취업을 하지 못했음. / 김○○(본인) 사우디로 가려다 신원조회에 걸려 가지 못하고, 아들도 취업하려다 신원조회에 걸렸다고 했음. / 채○○(자부) 조카가 경찰 시험에 매번 떨어진 것이 시아버지가 북에 다녀오신 것 때문에 안된 것이라고 했음.
납북귀환어부와 가족들에게 가해진 연좌제는 봉건시대의 악습으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국가폭력이다. 그러나 다른 유형의 피해보다 피해사실 입증이 어려워 피해회복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에 대해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국가를 상대로 권고했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연좌제 피해’를 입증하고 피해회복을 할 것인지, 쉽지 않은 해결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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