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동수 화백(1965~2019)의 작업실을 갤러리로 리모델링 하여 작품을 공개한다기에 얼마 전에 다녀왔다.
동향인 그를 생전에 만난 적은 없으나 지인들을 통해 그가 그릇과 책을 그린 화가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작품들을 보니 배경색은 대부분 검은색에 가깝다. 그림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지만 어두운 톤의 배경이 결코 침침하게 느껴지지 않고 거꾸로 사람을 몰두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는 것 같다.
갤러리에 나온 이 화백의 미망인(그녀도 화가이다)에게 물어보니 배경이 된 어두운색은 검은색에 가깝지만 무채색 검정에 무채색 하양을 배합하여 구현한 것이 아니라 유채색들을 섞어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배음이 된 이동수의 어두움은 흑색(黑色)이라는 고전적 이미지라기보다는 뉴에이지풍의 현광(玄光)의 메시지라고 부르는 것이 적확할지도 모르겠다.
갤러리 입구 오른편에 그가 미완성으로 남긴 작품이 있다.
막상 들어설 때는 눈에 뜨이지 않더니 커피를 마시러 탁자에 앉으니 맞은편으로 보인다. 덩그마니 화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차호(茶壺)로 보이는 정물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 같은데 하얀 캔버스 바탕에 아무렇게나 칠해 놓은 것 같은, 아직 배경이 되지 못한 붓 자국 몇 개가 보인다.
내가 아는 유일한 그림 이론인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2500년도 넘은 그 옛날 공자께서 이야기한 말이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소박한 마음이 화사한 무늬를 만들었구나.’란 말의 의미를 제자인 자하가 묻자 공자께서 ‘사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위에서다.’라고 답한 것에서 유래한 이야기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도 있다. 질(質)이 사람의 바탕이라면 문(文)은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이다. 고 이동수는 하얀 소질(素質)을 아름다운 문채(文彩)로 칠하며 살다 별이 된 것 같다. 세수(歲數)의 길고 짧음이 뭐 그리 대수랴.
이동수 갤러리는 양양선사유적박물관 인근에 있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작품도 보고 향 좋은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전면에 보이는 석호 습지 쌍호의 풍경은 덤이다.
한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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