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달홀문화센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전향숙 작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우연히 다가와 인생의 의미를 준 것은 다름 아닌 바다 쓰레기였다. 쓸모없는 천덕꾸러기가 어느 날 전향숙(53) 작가에게 다가와 꽃이 됐다.
꽃으로 다가온 바다 쓰레기
지난달 26일 고성달홀문화센터 1층 전시실에서 전 작가를 만나 꽃으로 다가온 바다쓰레기 비치코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 작가는 2016년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암을 발견했다. 3기를 넘긴 상황임에도 적극적인 치료와 반려견 덕분으로 무사히 암을 극복했다. 3년이 지난 2019년 암은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표적치료제가 잘 들어 암을 이겨냈지만, 우울증이 겹쳐왔다. 어느 날 손자가 다니던 유치원 마당에서 돌멩이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린 것을 보게 됐다. 원장선생님의 작품으로 2~3년 전에 경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비치코밍’ 강좌를 배웠다고 들었다. 배우고 싶어 알아봤지만, 강좌가 따로 개설되지 않아 유튜브를 통해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이후 작품제작에 몰입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닷가에서 돌, 유리조각, 조개껍데기 등을 주어와 당일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작품은 집안을 가득 메웠다.
“작품 제작에 집중하다 보니 암은 물론 우울증도 자연스럽게 치유됐어요. 그 덕에 다시 일도 시작했고요. 작품 구상을 하다 보면 매일 즐겁고 행복해요.” 고성 출신으로 현재 고성군 관광안내소에서 일본어통역안내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속초에서 화진포 관광안내소까지 매일 출퇴근하며 작품의 아이디어와 소재를 찾는다.
“울산바위 작품 만들고 싶어”
전 작가는 지난 1월 속초 바다뷰 카페에서 ‘환생’이란 주제로 60여점의 비치코밍 작품을 전시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대현 바다뷰 까페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전 작가의 작품을 보고 전시공간을 내줘 전시회를 열게 됐다. “‘환생’은 제가 죽음의 고비를 넘나드는 역경 속에서 그림을 붙잡고 다시 태어났듯 바다 쓰레기도 험난한 파도의 역경을 거치며 견뎌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단어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전 작가는 작품 판매액의 50%를 다문화이주여성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기부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김 대표 주선으로 인제군사회복지관에서 2차 전시회를 가졌다. “인제군사회복지관에서 첫날 20여 개의 작품이 팔려 나가 저도 깜짝 놀랐어요. 집에 많은 작품이 있어 다음날 가족을 통해 추가로 작품을 보냈고, 2주가량 전시에서 70여점의 판매액 중 50%를 인제군사회복지관에 기부했어요.”
전 작가는 지역에 비치코밍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15~30일 고성 달홀문화센터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정식 갤러리에서 연 첫 전시회였다. 이때도 작품 판매액 중 일부를 기부했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비치코밍을 계속해 작품 판매 수입 중 일부는 꼭 기부하려고 해요. 그리고 앞으로 울산바위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도전은 해봤지만, 작품의 무게가 부담돼 도중에 포기했어요. 꼭 만들어 보는 게 지금의 목표이고 꿈입니다.” 전 작가가 희망을 말하며 밝게 웃었다.
성낙규 기자 nk_22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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