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상황에서도 필자의 연주력은 나날이 발전했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각종 행사에도 참여했는데, 그중에서 현충일 행사가 여러모로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현충일 행사는 보광사 부근 산 중턱에 있는 현충탑에서 치러졌다. 속초시 주관의 행사였는데, 행사에 여러 명의 순국 유가족들이 참석하셨다. 유가족들 중에는 남편을 여의신 분도 있었고, 자식을 잃으신 분도 있었다.
관악부는 애국가, 묵념곡, 진혼곡, 현충일 노래 등을 준비해서 참석하였다. 분향식 때 진혼곡을 연주하면서였다. 어느덧 백발이 되신 유가족분들이 나라를 위해 떠난 자신들의 남편이나 자식들을 잊지 못하여 눈물을 훔치면서 분향하시는 모습을 보니 필자도 가슴이 뭉클했다.
행사가 끝나자, 시청의 행사 담당 실무자께서 격려금이 담긴 봉투를 악장 형에게 건네주셨다. 그 돈으로 짜장면 회식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천 달러도 안 되던 그 시절에 짜장면 회식은 우리에게 최고의 성찬이었다.
요즘도 관악부는 외부 행사 때 받은 격려금이나 답례품들은 관악부 자체적으로 재량껏 처리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그런데 간혹 그런 관례를 잘 모르고 학교의 공식 회계 절차를 밟아 처리하기를 바라는, 고지식한 교장 선생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후원금은 그렇게 처리하면 안 되겠지만.
그날 그 현충일 행사를 비롯하여 당시 속초 지역 행사는 물론, 군부대 행사까지도 속초고 관악부가 거의 다 도맡아서 치렀다. 그렇게 많은 행사를 치르려니 연습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만큼 연주 실력도 좋아졌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음악 환경이 워낙 열악하였다. 전용 연습 장소가 없으니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연습해야 했다. 학교 건물 뒤에 있는 조그마한 부속 건물(그 건물 안에 악기 보관창고도 있었고, 빵을 팔던 매점과 숙직실 같은 방도 있었다.) 옆 마당에서도 연습했고, 학교 뒤 야산에서도 연습했고, 비가 오면 빈 교실을 찾아다니면서 연습을 했다.
그 무렵에 행진곡 ‘하이 스쿨 카데츠(High School Cadets)’를 연습하였다. 그리고 ’미해군가‘라는 행진곡을 연습하던 중에 군부대에서 행사 지원 요청이 들어 왔다. 속초비행장 근처에 있던 동해안경비사령부라는 부대였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102여단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행사 내용은 군부대 가족 30쌍 합동결혼식이었고, 장소는 시내에 있는 대원극장(그 극장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지금은 건물마저 철거되었다.)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축혼가를 준비했다.
행사 당일, 군부대에서 지원해준 군용 트럭을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 결혼식은 일반 민간인 결혼식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군인들이라 그런지 관악부가 연주하는 행진곡에 템포를 맞추지 않고, 그냥 씩씩하게 걸어 무대 위로 올라가서 도열 하였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행사가 끝나니 수고했다며 군대 건빵 한 포대를 답례품으로 주었다. 우리 관악부원들은 그 건빵과 함께 다시 군용 트럭을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날 답례품으로 받은 군대 건빵은 정말 양이 많았다. 점심시간 때마다 먹곤 했는데, 간식거리가 몹시 귀하던 그 시절에 군대 건빵은 아이들 모두에게 아주 큰 로망이었다. 딴 건 몰라도 건빵만큼은 군대 건빵이 맛에서나 양에서나 최고였다. 사제 건빵보다 맛도 좋고 크기도 훨씬 더 컸다. 그런 군대 건빵을 관악부원이었기에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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