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모래알’을 운영하는 김남희 씨와 김신복 씨.
모래알에 진열된 판매 소품들.
“성공도 중요하지만 실패해보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청년 혼자라도 와서 품고 있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모여 고민하면 상상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모래알’을 운영하는 청년사업가 김남희 씨와 김신복 씨는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모이는 게 중요하다며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이 공간이 다양한 삶의 선택지가 교차하는 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속초시내의 건물 2층에 있는 ‘모래알’을 처음 찾았을 때 이들은 편하게 내부를 구경하라며 기자를 반겼다. 공간 한쪽에는 악세사리, 엽서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한쪽에는 여럿이 모여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 또 한쪽에는 커다란 조명이 놓인 사진 스튜디오 등 각각 다른 공간에 있을 법한 것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소품샵과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면서 로컬상점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누구나 편하게 방문해 구경하고 쉬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젊은 예술가들 속초서 활동 고민
속초에 연고가 없던 두 청년이 함께 ‘모래알’을 꾸리게 된 사연이 조금 특별하다. 두 사람은 속초 스쿠버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전라도 광주에 살면서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김남희 씨는 일 때문에 먼저 속초에 살고 있던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위해 4년 전 속초로 왔다. 김신복 씨는 뮤지컬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문화·예술교육 관련 일을 하던 중, 서울 청년들이 10개월 동안 지역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경험을 지원하는 ‘청정지역 프로젝트’를 신청해 속초 스쿠버센터에서 일하게 됐다. 남희 씨와는 3개월 정도 같이 일하다가 신복 씨가 서울로 다시 돌아가면서 2년간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하며 지냈다.
로컬상점 ‘모래알’을 먼저 구상하고 시작한 것은 남희 씨였다. 속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당시 친하게 지냈던 디자이너들이 줄줄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보며 ‘왜 속초는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어려울까?’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남희 씨도 디자인을 전공해 속초에서 청년 작가로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광주나 서울처럼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 나누며 교류할만한 장소가 한 곳도 없었다. 문득 ‘그럼 내가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모집한 ‘G-스타트업 창업지원사업’에 지원해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쿠버센터에서 함께 일하면서 문화·예술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서로 편견 없는 성격으로 잘 통했던 신복 씨에게 SOS를 보냈다.
신복 씨는 바다와 산이 있는 속초 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남희 씨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속초로 다시 온 지는 한 달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창업은 예상보다 험난한 길이었다. 알려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함은 물론, 지원받은 창업 자본과 문화·예술교육 지원금도 공공자원이다 보니 기준에 맞춰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좌절감이 올라올 만도 하지만 두 사람은 ‘이 모든 게 다음 주자를 위한 길을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이 있다면 사업계획서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고 서로의 계획을 나누며 응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진행
‘모래알’이라는 공간에 대한 정체성은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한 사람이 온전히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두 사람이 지향하는 모토이다. 지역민들과 함께 이 공간을 누리기 위해 계속해서 지원 사업에 도전하는 만큼, 작은 지역에 붙어살지만 다양한 삶의 모양과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서로 의지하면서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갖다 보면 이 공간의 정체성도 툭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구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제도나 규율보다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공기가 통하지 않고 안에만 고여 있으니 전체적인 생활 반경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죠. 우리의 작은 콘텐츠들이 그런 공기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요. 이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나마 꾸준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속초는 지내면 지낼수록 공기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편 ‘모래알’에서는 앞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오는 28일에는 내가 그린 그림으로 굿즈를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상시 모집 중인 ‘푸른 시선 프로젝트’는 ‘누구나 푸름을 품고 있다’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8월에 전시할 예정이다.
또 강원문화재단이 주관하는 ‘디딤돌 문화예술교육학교’의 일환으로 7월 11일부터 9월 19일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자문자답 대화집’을 연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 속에서 나와 타인, 다양한 존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감각을 일깨우는 프로그램이다. 신청과 기타 문의는 인스타그램(@sokcho_moraeal)을 통해 가능하다.
정채환 인턴기자 gukyo101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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