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은 시간, 땀 흘리는 노동 존중 문화 필요
영감자원 넘치는 고성, 이주 예술가 위한 정책 있어야
지난 2022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준비된 가벼운 청년 창업을 위하여’라는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는 (예비) 청년 창업자의 실제 창업 및 성장을 돕기 위한 정책방향을 수요자 관점에서 제시하는 보고서였다. 기존의 청년 창업은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쉬운 생계형에 편중되다 보니 금융의 안정성이나 서비스 접근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회 진출 후 안전망이 없다 보니 청년세대의 창업 교육이나 준비기간이 부족하고 미흡한 경제적 성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의 청년몰 실패요인 중 하나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창업을 유도하는 정책과 함께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창업의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또한 청년 창업 정책은 다부처 청년 정책과 연계되어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빛나르고는 환경 기반의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최근 고성문화재단과는 반려해변과 친환경 문화기획 등의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
예비사회적 기업 선정 ㈜빛나르고
예비사회적 기업에 선정된 ㈜빛나르고는 이런 정책방향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미현 대표는 속초시의 청년네트워크를 통해 빛나르고의 구성원을 만나고 속초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의 활동기회가 ‘준비된 가벼운 청년 창업의 구상 시기’였다고 말한다.
“저희는 창업을 고려하기 전에 청년 커뮤니티이자 단체로 활동을 해왔어요. 문화도시사업 도움부터 시작해 행정안전부의 지역문제해결플랫폼에서의 실험, 강원도 청년공동체활성화사업 등 이 모든 과정이 ‘창업’을 생각하기 전에 이루어졌고, 이러한 지원을 통해 지역에 더 깊게 녹아들게 되면서 ‘창업’을 도전하게 되었어요. 지역이 저희에게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창업 정책이 특정 부처의 과제가 아니라 다양한 실험기회를 제공하면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와 희망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빛나르고가 시작하게 된 계기인 청년정책네트워크가 2023년에는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정책네트워크는 속초시가 청년조례를 제정하고 청년정책을 반영하기 위해 2021년 1기를 시작으로 운영한 청년 참여 소통기구다. 속초에 거주하거나 생활근거지가 속초인 만 18세~39세 청년을 대상으로 조직하였다. 1기는 33명의 회원이 토론회, 워크숍, 청년주간행사, 성과공유회 등 30회의 참여활동을 통해 청년 정책 기반구축을 위한 붐을 조성하였다. 2022년에도 2기 회원 30여명을 모집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활동은 미흡하다.
당시 활동했던 청년은 ‘청년정책네트워크’의 장단점에 대해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이 만날 수 있는 자리 자체는 굉장히 좋았지만,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하기 위한 과정의 설계가 미흡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즉, 청년의 정책제안을 위한 워크숍 같은 활동 외에 주민참여제 같은 제도적 장치가 없다보니 ‘네트워크’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토로한 것이다. 앞서 보고서의 청년 창업 정책이 다부처 청년정책과 연계되어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제안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빛나르고는 문화도시를 비롯한 다양한 부처사업과 연계하며 내력을 키울 수 있었고 창업으로 이어지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속초의 문화도시 사업이 ‘실패해도 좋은 청년의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면 더욱 많은 사례를 만들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고성문화도시 상상워크숍 분임 토의 현장. 김들림(오른쪽 첫 번째)씨는 고성 정착 후 개인 예술작업과 함께 다양한 문화기획의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다.
청년 예술가 부부의 고성살이
고성살이 9개월인 청년 예술가 부부의 사례는 속초와 다른 방향에서 시사점을 준다. 김들림씨는 김기훈 씨와 프랑스에서 10년간 학사와 석사를 마친 예술가이다. 예술가 비자로 프랑스 생활을 연장할지 한국으로 귀국할지 고민하던 중 귀국을 선택했고 정착지는 고성이다. 고성에 정착한 이유가 재미있다. 해녀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바다가 직장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부부의 모험심도 작동했다. 외진 곳, 손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고성이 매력적이었다.
“저희 부부는 노동과 예술에 대해 함께 성찰해 왔는데 정신노동을 하다보니 육체의 잉여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생업으로 해녀를 지망하고, 김기훈씨는 주류회사에서 주4일 근무직을 하고 있어요. 나머지 3일은 예술가로서 본분을 다하려 고군분투하고 있죠.”
자신들이 좋아하는 예술활동을 위해 ‘최소한의 일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고성문화재단과 협력해 ‘오픈 스튜디오’와 ‘청년 예술인 정착지원 사업’에도 기획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 지역에 정착하는 청년들은 할 일이 없어서 지역에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지역을 선택한 것이다. 김들림씨의 경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한 최적의 일거리를 찾았다. 이들의 정착은 당장 고성문화재단의 새로운 문화활동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정착 청년의 가치를 ‘공공의 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김들림씨에게 청년(예술인)이 고성에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청년이 쉽게 주거할 수 있는 형태의 주거환경이 부족했어요. 아파트도 적고 월세나 전세도 매우 적었죠. 여가활동을 위한 환경도 부족한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특징 있는 동네문화가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 우리처럼 정신노동 하는 청년에게 땀 흘리며 대가를 받는 노동의 형태를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가 그랬듯이 고성은 이주할 만큼 영감이 넘쳐나는 어머어마한 자연과 흥미로운 역사가 있거든요. 그런 이주 예술가들이 많이 늘어날 수 있는 정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김들림씨의 제안은 청년의 고성살이를 위한 정책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자리의 다양성, 부족한 주거환경의 극복, 생활권 문화마을의 조성 등이다. 결국 일자리와 주거, 지역문화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청년의 정착은 문화생태계를 튼튼하게 만들고 지역의 매력을 높일 수 있는 변화의 촉매재가 될 수 있다.
김인섭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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