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장국철
서양화가 장국철의 개인전이 지난 12일부터 ‘강원진로교육원 갤러리’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색동옷감, 광목, 옹기 같은 예스럽고 소박한 소재의 작품들과 이 지역 사람에게는 시선만 돌리면 보이는 동해바다와 설악산 달마봉을 그린 수채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회는 오는 28일까지 진행된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 즉 ‘정지되어 있는 생명’이란 뜻을 가진 정물화(靜物畵)는 장국철 화가의 정교하고 치밀한 사실 기법 덕분에, 추억과 기억 속에 있는 사물에게 마음을 열고 과거와의 만남을 시도하려는 그의 각별한 붓놀림 덕분에 전시회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장국철 화가는 속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수많은 전시 이력에서 속초는 빠져있다. 속초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된 소감을 묻자 “생각지도 않게 크게 소문이 나서 머리가 복잡해졌다”고 말한다. 이어 “현재 강원예술고등학교장으로 재직 중인데 2025년 2월이면 정년이다. 이전에 속초에서 전시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더 조심스럽고 신중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덜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중2 때 미술 선생님이 보여준 작품 전시를 보고 지금의 내가 되었듯 우리 아이들에게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꿈을 꾸고 펼칠 수 있는 단초 역할을 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통해 장국철 화가의 울림이 있는 작품 세계를 들어 보았다.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다고 할까”
-화가 장국철에게 ‘정(情)’은 어떤 의미인가.
“한때는 ‘잊혀진 것들’이라든가 ‘지난 이야기’ 등등을 작품 제목으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다 합치면 ‘정’인 것 같아요.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이나 그 속에 담긴 스토리들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했던 거잖아요. 그것을 보면 매만진 사람들의 정서에 대한 정이 느껴지는 거예요. 외롭고 소외된 것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하며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었고 안주할 곳 없는 현대인의 마음과 상처를 회복해 주고 싶다는 생각, 오늘과 먼 훗날에 남겨질 것을 생각하다 보니 ‘정(情)’으로 흐르더군요.”
-작품들의 모티브(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나는 사물을 볼 때, 어떤 사람이 만들었을까, 어디에 있다가 어떤 사람들의 손길을 탔을까, 어떤 사람들에게 쓰였을까, 어떤 부엌에 있었을까, 그런 것들을 막 추적하고 상상해요. 그러면 걔네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리고 조명을 딱 비춰주면 걔네들은 나한테 무대 위에 있는 주인공이 되지요.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그렇게 생명을 내가 느끼는 거죠. 생명을 부여한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저들의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까 하고 많은 연구를 합니다.”
-그림이란 삶에서 어떤 존재인가.
“많은 사람이 신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세상만사를 들여다보면 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신은 내 손과 함께 존재해요. 내가 자세가 안 되고 준비가 안 되면 쓰이지 않을 거잖아요. 그러니 쓰임을 받으려면 할 수밖에 없고…. 모든 일을 가급적이면 그런 관점으로 해요. 글 쓰는 것도, 음식 만드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작품처럼 하자고 생각합니다. 잘하는 것이 그림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니까 이게 거의 숙명과도 같은 거죠. 안 하면 직무유기입니다. 아직까지 아주 만족하는 그림은 없지만 그러기에 더 도전하고 싶어요. 그러면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감흥을 줄 수 있겠죠. 진짜 운명이고 사명입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우선 해야 할 일들을 잘하기 위해서 건강했으면 좋겠고, 출전하지 않았던 공모전에도 나이가 들어서라도 한번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상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작품을 냄으로써 기념비가 될 만한 작품들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리고 혹시라도 기회가 오면 어린아이들을 위해 힘 써보고 싶어요. 재능이 있는데 발견되지 못한 아이들, 작품을 많이 보지 못한 아이들이 분명히 우리 가운데는 있거든요. 직간접적으로 아카데미를 하든 도제를 하든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작품하는 것 같이 살고 싶고 틈틈이 제가 마음에 품었던 것들을 이루면서 모든 분들에게 신비로움까지는 안 되더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그런 그림을 계속적으로 그리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꿈을 꾼다. 그러나 액션을 취하지 않고 꿈만 꾼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꿈일 뿐이다. 장국철 화가는 새벽에 일어나 문명의 소리를 차단한 채 고유한 사물들의 세계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꿈을 꾸고 단지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말한다. 오늘도 꿈을 향한 하얀 캔버스는 화가 장국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채워지는 중이다.
김향숙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장국철 화가의 전시작품. 정-2016-8-oil on canvas-10호(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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