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출신이면서 세계적으로나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나 예술인들을 속초나 설악동에 영입하여 예술인촌을 조성한다면, 속초의 문화예술 진흥과 관광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화천군은 민선초기부터 문화·경제·관광 등 다방면에서의 지역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인기 소설가인 이외수 작가를 ‘감성마을 촌장’으로 영입하였다. 그리고 화천군에서는 이외수 작가의 집필실과 강연장, 문학관 등 문학공원을 조성하여 주고 많은 문하생과 방문객이 감성마을을 찾게 하여 화천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나는 화천군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침체된 설악동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설악동 예술인촌(또는 대장금촌)’ 조성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유명예술인을 촌장으로 영입하여 촌장이 설악동에 거주하면서 창작활동과 강연도 하고 자료관, 갤러리도 함께 만들어 많은 문하생과 관광객이 설악동을 방문하고 체류시키는 방안으로 추진하였다.
설악동재개발추진단 직원들과 함께 유명 탤런트 이영애씨와 최불암씨 등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협의를 진행하였고 그들도 설악동 현지를 다녀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예술인촌 조성사업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설악동을 갈 때마다 그때의 아쉬움이 되살아나곤 한다.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영입대상 유명작가나 예술인들이 우선 설악동에 많은 애정을 가져야 하고 실제 거주하면서 창작과 교육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속초 사진리 출신 ‘고형렬 시인’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성공하지 못했던 사업을 알리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속초출신이면서 세계적으로나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나 예술인은 없는 걸까? 이들을 속초나 설악동에 영입하여 예술인촌을 조성한다면, 고향발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축적된 경험과 경륜을 살려 속초역사(歷史)에 발자취를 남기려는 예술적 열정을 쏟는다면 속초의 문화예술 진흥과 관광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면서 아시아나 전국적인 무대에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속초 장사동 사진리가 고향인 ‘고형렬 시인’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1979년 <현대문학>에 시 ‘장자(莊子)’를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한 그는 16권의 시집을 발간하고 잡지 등에 1,000여편의 방대한 작품을 발표할 만큼 전 생애를 시와 함께 살아온 걸출한 시인이다. 이제는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다.
15년 동안 집필한 전 7권 분량의 <고형렬 에세이 장자>를 비롯하여 장시 <붕(鵬)새>, <리틀보이>, 장편산문 <은빛물고기>, 속초를 추억한 자전적 사진 에세이 <등대와 뿔>, 동시집 <빵들고 자는 언니>, 중국 시경해설서 <아주 오랜 시와 사랑이야기> 등 많은 문학작품을 간행하였다.
계간 <시평(詩評)>을 53호까지 발간하여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 유명 시인과 교류하면서 900여 편의 아시아 시를 국내에 소개하고 아시아 시인대회 및 시인 초청 순회 시낭송회를 여러 차례 개최한 바 있다. 한·중·일 15명의 시인이 모인 국제동인 ‘몬순’을 결성하는 등 아시아 시문학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특히 고형렬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속초의 동해와 설악산을 모태로 하여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 첫 시집 <대청봉(大靑峯) 수박밭>을 비롯하여 눈 내린 고향의 풍경을 묘사한 ‘사진리 대설’, 고성출신 이성선 시인의 타계소식을 듣고 미시령을 넘으며 쓴 시 ‘밤 미시령’, 고성 북천과 양양 남대천 연어의 끊임없는 회귀정신을 10년의 세월을 걸쳐 추적해 쓴 장편에세이 <은빛 물고기> 등 고향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준높은 작품활동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아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백석문화상, 지훈문학상, 일연문학상, 인물대상(문예)등을 수상하였다. 아시아시인들(The Poet Society of Asia) 대표, 한·아세안시인 문학축전 조직위원장, 창비 편집부장을 역임했으며, 천상병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천상병시상 심사위원장, 김유정 신인문학상(시부문)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속초시 행정에서는 예술촌이나 ‘시인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기본여건만 조성해 준다면 세부적 운영 경비는 스스로가 시문학잔치, 시인축제 등을 개최, 소득을 창출하여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예술촌·시인대학 기반 마련됐으면…
속초에는 왕성한 작품할동을 펼쳐나가는 훌륭한 문인들이 많다. 문인들은 매년 시와 수필 등 다양한 부문의 작품을 수록하여 동인지 <갈뫼>를 발간해 오고 있다. 1970년 제1집을 시작으로 1976년을 제외하고 매년 발간하여 작년까지 <갈뫼 52집>이 발간되어 속초의 소중한 문화역사자료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속초시에서는 2013년 시승격 50주년을 맞아 후세에게 물려줄 타임캡슐 수장품으로 갈뫼지를 대표적 선정하여 봉입한 바 있다. 이 타임캡슐은 시승격 100주년이 되는 2063년에 개봉할 계획으로 설악해맞이공원에 매설하여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
고형렬 시인은 1970년대 속초의 문인들과 함께 작품활동을 펼쳐왔으며 젊은 시절부터 서울 중앙무대에 진출하여 등단 44년 생애 전체를 통하여 쉬지 않고 시를 발표하여 오늘날 한국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만약 속초시 지원 아래 예술촌이나 시인대학 등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면 고형렬 시인과 속초문인들이 함께 시문학을 발전시켜 한국 으뜸의 속초 문화유산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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