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현 인권 운동가가 글을 쓰고, 2004년에 <팥죽할멈과 호랑이>로, 2019년에 <사과나무밭 달님>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윤미숙 작가가 그린 그림책 ‘만약에 내가’를 오월에 만났다.
“모든 국민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그럼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마주친 문장이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림책의 배경인 전제 군주국가의 왕이 하는 소리지만, 지금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단어만 다르지 많이 듣던 소리로 들리는 기시감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왕은 다른 나라 전쟁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면서 전쟁을 피해 도망쳐온 피난민을 쫓아낸다. 그리고 발이 크면 게으르다고 발이 큰 사람을 쫓아내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다. 그 이후로도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고, 노인은 일을 못 하니 쓸모가 없다고 모두 성 밖으로 쫓아낸다.
주인공은 피난민도, 발이 큰 사람도, 개를 키우는 사람도, 장애인도, 노인도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는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의 병사들이 주인공을 잡으러 온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면서 그제야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목소리 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만약에 사람들이 쫓겨날 때 주인공이 이건 잘못된 일이라고 나섰다면 좀 달라졌을까?
그림책에서 왕이 쫓아낸 이들은 사회적으로 힘이 없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소수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인권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침묵을 택한다. 아직 자기에게는 어떤 피해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부당한 행동을 당연시하며 일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정책이 옳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림책 속 세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크게는 국가정책, 작게는 내가 사는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올바르지 않는 일에 대해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는 작은 목소리를 냈다가 혹시나 당할지도 모르는 개인적인 피해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갑남을녀는 다른 사람에게 벌어지는 차별, 편견, 혐오, 고통에 대해 알면서도 침묵을 선택한다. 그러다 자신이 똑같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해야 비로소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이웃을 원망한다. 필자 또한 그러한 갑남을녀 중 하나이다.
그림책 ‘만약에 내가’의 뒤표지에 쓰여진 ‘만약에 내가 그때 나섰다면…’이라는 글텍스트를 오래 들여다 본다.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물 흐르듯 흘러 바다처럼 융합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듣는 귀가 막히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가 존중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고인 물이 되어 마침내 아무도 살지 못하는 썩은 물이 될 것이다.
땅 위에서 흘러드는 온갖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도 스스로 맑아지는 저 바다처럼, 필자가 사는 속초도 작은 목소리들이 합쳐 큰 목소리를 만드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한 그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는 큰 귀를 가진 리더들이 많아졌으면 더 좋겠다.
내일, 나는 주변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