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문마을 주민 박용범씨가 간직하고 있는 부친의 강제동원피해 기록. 1957년 정부가 작성한 <왜정시피징용자명부-강원도>에는 우리 지역 강제동원 피해자가 다수 확인된다.
지난 2020년 5월 속초문화원에서 상도문 마을이야기를 엮어 발간한 <돌담따라 이야기 한자락>에는 징용피해자 후손 박용범씨가 제공한 ‘왜정시피징용자명부-강원도’ 복사본 일부가 실려 있다. 이 명부는 1957년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 신고를 받아 작성한 자료이다. 1957년 속초에서는 모두 90명의 징용피해자가 신고했는데, 내물치리 4명, 중도문리 6명, 상도문리 9명이 포함되어 있다.
상도문 1·2리 마을에서는 윤석하(23세), 박용혁(23세), 박종실(32세), 박영익(23세), 오봉환(47세), 안상호(22세), 주원남(32세), 양의구(30세), 이원교(31세)가 징용에 끌려갔다고 신고했다. 이들 중 해방이 되어 다른 사람들은 돌아왔지만, 북해도로 끌려간 안상호는 귀환하지 못했다. 명부에 나오는 징용 피해자인 박용혁의 아들 박무웅 전 속초문화원장은 다음과 같이 부친의 징용 피해 사실을 회고했다.
아버지는 나를 낳고 그해에 바로 보국대라고 해서 일본으로 징용에 끌려가셨어요. 어느 해변가에 부교를 만들어 놓고 목도를 했다고 해요. 항공모함 만드는 곳에 우리나라 청년들 3천명이 동원되어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옆구리를 다쳐서 돌아와서도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저더러 일본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임종하기 전까지는 일본에 가지 않았어요.
상도문마을 주민 강제동원 피해 입어
피해자 박종실의 아들인 박용범씨는 지난 2005년 5월 강원도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실무위원회에 피해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신고 내용을 근거로 박종실씨의 피해 사실을 재정리했다.
박종실은 1913년생으로 1943년 여름부터 1945년 8월까지 약 24개월 강제동원되었다. 1943년 여름 강제로 동원될 당시 나이 30세로 상도문 마을에서 노모와 처, 1남 2녀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마을구장이 강제 징용이나 노무자 차출을 맡아 했는데, 박종실은 노무자로 차출되어 원산 전쟁물자 창고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다. 동원자들은 속초역에 모여 기차로 집결지인 원산으로 갔다.
원산항 근처 창고에 합숙을 하며 대기하고 있다가 몇 명씩 창고를 건립하는 현장으로 재배치되었다. 작업은 아주 힘들었다. 외부와는 연락도 되지 않고 공사장 간에도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곧 고향에 보내준다고는 했지만, 언제 돌아갈지 알 수 없었다. 옥수수죽이나 콩깻묵(대두박)에다 반찬으로 소금에 저린 시래기와 단무지를 먹었다. 일이 끝나면 저녁에는 일본제국주의 선전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해방이 되어 일본인과 한국인 간에 충돌하는 일이 간간이 발생했다. 동원된 노무자도 각자 갈 길을 가라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기차도 없지만 가진 돈도 없어 해변길로 걸어서 문전걸식하면서 15일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돌아온 후 강제동원 생활에서 얻은 위장병으로 장기간 약을 복용했다. 가족들도 가장이 없는 2년 동안 굶주림과 질병으로 크게 고생했다.
속초 청대리·양양 현남면 피해자 이야기
2007년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 포로의 기억-1>에는 속초 청대리 출신 김상기씨의 피해 사례가 나온다. 김상기씨는 1924년 10월 옥계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를 따라 양양군 속초읍 청대리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는 남의 땅을 부치며 어렵게 살았다. 속초주재소에서 급사로 일하면서 독학을 해 주재소에서 일본 오사카공업학교에 유학을 보내줬으나 1년도 못 되어 징병검사 통지를 받고 귀국했다. 몸이 허약하여 군 면제대상인 제2을종을 받았으나, 1945년 4월경 영장을 받고 사할린(화태) 육군 야마사키부대에 배치되었다. 속초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을 거쳐 서울 용산 군부대에 끌려갔다. 그리고 다시 일본을 거쳐 사할린까지 갔다.
김씨는 해방 후 3일 만에 소련군 포로가 되어 블라디보스토크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벌목작업에 동원되어 고생하다가 1947년 봄이 되어서야 청진항으로 귀환해 속초로 돌아왔다. 해방 후 형과 누나는 서울로 갔는데, 어머니 혼자 청대리 집에 남아 아들이 살아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도 남양군도에 군속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왔다.
2013년 강원도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강원도사 8권>에는 양양군 강제동원 피해자 김윤태씨 이야기가 나온다. 김윤태씨는 1923년 양양군 현남면에서 태어나 1944년 영장을 받고 4명과 함께 소집되어 징용되었다. 영장을 준 면서기와 일본 경찰이 도망가면 가족이 고통을 받을 것이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는 양양역에서 기차로 부산으로 간 후 옷을 갈아입고 오카야마의 미쓰이 조선소에 배치되었다. 철판을 자르거나 구멍을 뚫는 일은 일본인 기술자가 하고, 조선인들은 나사를 조이거나 잡일을 하였다. 월급은 적었고, 일본인 죄수들과 함께 조선소에서 일했다. 조선소에서 사고가 나서 부상을 당해 실명을 하고 귀환했는데, 같이 징용간 사람들 중에 2명이 사망했다. 이 사례는 2002년 김인덕이 쓴 <강제연행사 연구>에 수록된 내용으로 <강원도사>에서 다시 인용했다.
속초역 앞에서 불시에 끌려가 강제동원
속초역에서 불시에 경찰에 연행되어 강제동원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07년 간행한 <지독한 이별, 사할린 이중징용 진상조사 구술기록>에는 고성군 출신 손용암씨의 피해 구술 내용이 나온다. 1928년 고성군 장전읍에서 태어난 손용암씨는 1943년 11월 16세 나이로 속초옆 앞에서 순경에게 연행되어 사할린의 탄광에 동원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 시험을 하다가 배에 쓸 밧줄 등 어구를 사오라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속초에 와서 속초역 앞을 지나다가 순경에게 연행되었다. 인근 여관에 구금되었는데, 여관 안에는 손씨처럼 불시에 걸려 들어온 20~30대 남자 10여명이 함께 있었다. 손씨는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순경한테 몽둥이를 맞고 구타를 당하며 억지로 기차에 실려 끌려갔다. 같이 속초역에서 기차를 타고 간 사람은 50명 정도 된다. 부산을 거쳐 시모노세키로 가는 연락선을 타고 나서야 근로보국대에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손씨는 16살 나이에 북해도를 거쳐 사할린(화태)으로 끌려가 다음 해인 1944년 10월까지 이름 모르는 탄광에 동원되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고 마차와 눈썰매만 다니는 오지였다. 탄광 일을 하다가 다이너마이트 발파로 이마에 상처를 입고 허리를 다치기도 했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탄광 노무자 20명과 같이 차출되어 다시 일본 나가사키현 미쓰비시(삼릉) 다카시마탄광에 배치되었다. 다카시마탄광과 인근 하시마(군함도)탄광은 1939년부터 4천여명의 한국인이 강제로 끌려간 곳이다.
일본은 과거 죄수들을 동원해 채굴작업을 하던 다카시마탄광에 한국인과 중국인을 강제동원시켰는데, 다카시마탄광은 미쓰비시가 맡은 이후로 1천여명이 재해와 질병으로 사망할 정도로 열악한 탄광이었다.
이곳에서 손씨는 바다 밑 채탄장까지 내려가 무연탄 채굴작업에 동원되었다.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원폭 피해로 죽었다. 다행히 손씨는 폭탄이 터지던 때 깊은 갱 안에서 작업을 하느라 변을 당하지 않았다.
해방이 되어 10월 초순에 귀환했다. 노무자로 일하면서 한 달에 3원, 5원을 받아 은행에 예금했지만 귀환 당시에는 고작 15원만 받아왔다. 2년 동안 강제동원되어 고역을 치른 대가였다. 어렵게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쳐 고향 강원도 고성군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우리 지역에서 확인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가해자인 일본이 강제동원 사실인정과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강제동원 피해 해결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강제동원 사실확인과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피해자들의 구제와 문제해결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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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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