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처음에, 관악부 활동이 재개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무렵이 여름방학 때여서 필자는 묵호(지금의 동해시 묵호동) 이모님 댁에 있었다. 그 사이에, 즉 필자가 이모님 댁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관악부 활동이 재개되었는데, 3학년이 된 필자의 관악부 동기들이 23회 후배 부원들에게 선배랍시고 군기깨나 잡았던 모양이었다. 후배들한테 이런 말까지 들었다.
“말도 마세요, 3학년 형들이 틈만 나면 연습장에 나타나서 이것저것 참견도 하고, 겁도 주고, 기합도 주고…. B형한테는 줄빠따까지 맞았어요. 순종이 형은 잔소리는 좀 많이 했어도 때리거나 기합을 준 적은 없었지만.”
심지어 A라는 친구는 관악부원도 아니었는데, 후배들 연습 장소에 나타나 악기 시범 연주까지 했다고 한다. A는 관악부원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잘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 A의 시범 연주를 본 임수철 후배는 지금까지도 A가 관악부 선배인 줄 알았고, <우리 지역 관악부 이야기>에서도 21회 선배 중 한 명으로 소개를 했다고 한다.
관악부 재창단 초기의 이러한 혼란은 필자가 후배들에게 만장일치의 동의를 받아 악장으로 추대되면서부터 모두 수습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악장이 누구냐고 했고, 동기생들은 필자가 후배들 지도 적임자라고 하고, 23회 후배들은 필자를 매우 신뢰하는 상황에서 거의 얼떨결에 ‘악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악장이 되니 음악적인 고민이 매우 커졌다. 이제 앞으로 이 많은 관악부의 여러 파트들을 혼자 어떻게 가르치지? 동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등등 고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후배들 악기 지도부터 난감했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의 파트는 클라리넷이었다. 그래서 같은 목관악기이면서 클라리넷보다는 상대적으로 소리내기가 좀 쉽고, 운지법(運指法)도 덜 까다로운 색소폰은 어느 정도 지도가 가능했다. 그런데 트럼펫, 트럼본, 유포늄 같은 금관악기가 문제였다. 합주에서 모든 파트의 악기가 다 중요하다. 그런데 관악 합주에서 트럼펫과 트럼본 파트는 특히 더 중요하다. 그래서 고민이 더 컸다. 그런데 필자의 음악적 고민과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잘 해결이 되었다.
트럼펫 파트는 처음 부원들 변동을 몇 번 겪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손형석’이라는 후배가 새로 들어왔다. 바로 그 후배가 구세주였다. 손형석은 초등학교 관악부 출신이었다. 그래서 기본기는 웬만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 후배 형도 관악부 출신에다 군악대 출신이었다. 손 후배는 음악적인 배경이 아주 탄탄했다.
트럼본 파트는 고민할 게 사실상 없었다. 초기 트럼본 파트 부원 중 한 명은 박진호였고, 또 한 명은 임수철이었다. 박진호 후배는 속초중 관악부 악장 출신이었다. 트럼본 파트에서 3년간 맹활약을 했던 실력파였다.
반면에, 임수철 후배는 관악부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박상인 담임 선생님께 적극적인 입단 권유를 받았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리고 부원들 중에서 악보도 가장 잘 읽었고(트럼본 악보는 높은음자리표 악보가 아니라, 읽기가 좀 불편한 낮은음자리표 악보인데도 불구하고), 연습도 아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알토혼, 유포늄, 튜바는 운지법이 트럼펫과 같기 때문에 21회 동기 중에서 트럼펫을 했던 친구가 후배들 지도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졸업생 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그중에서도 19회 허승훈 선배가 가장 자주 학교를 방문하여 후배들 연습에 큰 기여를 했다.
‘관악부 활동일지’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기록을 하였다.(그 일지, 지금 볼 수 있다면 당시 속초고 관악부의 생생한 역사를 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틈만 나면 속초중 김일현 음악 선생님을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음악 지도도 받았다. 후배들을 가르치려니 나부터 음악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전공 파트였던 클라리넷 파트가 오히려 문제였다. 딴 파트에 비해 아주 진도가 더뎠다. 물론 나중에는 정상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어려운 데다가 당시 속초고 관악부 클라리넷이 워낙 상태가 나쁜 고물 악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학교 관악기 중 속칭 삑사리(음이탈)가 가장 잘나는 악기가 바로 클라리넷이다. 그만큼 쉽지 않은 악기다. 운지법도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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