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114명·홋카이도 86명
양양철광·삼척광산도 다수
‘매곡일기’에 징용·징병 기록
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온 한국인 8~14살의 소녀들이 일본 규슈 하카다에서 귀국을 앞두고 촬영한 사진. 사진 뒷면에는 “Korean Girls, Age 8 to 14, Who Were Brought to Japan to Serve as War Workers, Await Transportion Back Home”이라고 적혀 있다. 1945년 10월 19일 미군이 찍은 사진으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해제 자료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게시물을 인용했다. 한국에서 사진 오른쪽 소녀가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한자로 ‘귀환 전라북도 여자근로정신대’라고 적혀있다.
노무강제동원은 일제가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한 후 강제로 산업현장에 노동인력으로 끌려간 것을 말한다. 동원 지역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남사할린, 동남아시아, 태평양 일대 남양군도 등이며, 군수공장과 광산, 조선소, 토목공사장 등에 동원되었다. 여자근로정신대와 같이 여성들도 강제동원 피해를 입었다. 노무자 동원은 모집과 관알선, 국민징용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모두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집행되었다.
국가기록원의 강제동원자 명부 중 양양군 피해자들의 동원지 중에 군노무자인 군속의 동원지는 남양군도 일대가 가장 많으며, 민간인 동원지로는 일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구주(규슈)와 북해도(홋카이도)에 가장 많이 끌려갔다. 1957년에 신고를 받아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는 양양군 피해자 114명이 일본 규슈로, 86명이 홋카이도로 끌려갔다고 나온다. 기업으로는 삼릉(미쓰비시)이 39명으로 가장 많다. 복강현(후쿠오카) 삼릉 탄광으로 37명, 삼릉 대판(오사카) 조선소로 2명이 끌려갔다.
강제동원자들은 규슈에서도 복강현(후쿠오카) 탄광에 가장 많이 끌려갔다. 양양군에서 복강현으로 끌려갔다는 피해자만 72명이다. 1990년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 등 자료에 의하면, 양양군 출신이 복강현에 있는 삼릉기총광업소에 27명, 삼릉반총광업소에 10명, 상반탄광에 5명, 삼정삼지광업소에 2명 동원되었다. 복강현 팔번(야하타) 일본제철소 등에 끌려간 피해자도 9명이다. 복광현 탄광에서는 양양군 징용피해자 7명이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다. 같은 규슈 지역인 좌하현(사가현) 광업소에 3명, 장기현(나가사키) 탄광과 조선소에 7명이 동원되었으며, 이중 2명은 원폭 피해까지 입었다.
북해도에 있는 삿포로탄광, 청도탄광, 미류도광광업소 등에 양양군민 86명이 동원되었다. 대판(오사카)의 조선소와 병기공장, 제광소, 탄광 등에 30명이 동원되었다. 동경(도쿄)의 조선소, 건설공사, 고천(후루카와) 등에 13명이 동원되었다. 병고현(효고현) 춘일광산과 파이프공장 등에 9명이 동원되었고, 병고현청이 있는 신호(고베시)와 신호천기(가와사키중공업)에도 18명이 동원되었다.
이밖에도 산구현(야마구치현) 대령탄광과 오끼야마탄광 등 11명, 광도현(히로시마현) 8명, 장야현(나가노현) 7명, 복도현(후쿠시마현) 복도탄광 등 7명, 천도열도(쿠릴열도) 비행장 5명, 사일시 6명, 삼중현 기주광산 2명, 자성현 일립광산 등 3명, 명고옥(나고야)탄광 등 4명이 동원됐다. 일본고주파로 끌려갔다는 피해자도 6명이 있는데, 함북 성진의 일본고주파중공업인지, 일본에 있는 고주파중공업인지 확인이 안 된다.
지난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이 낸 소송에서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본전범기업 배상을 판결했다. 피해자들은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 복강현 팔번(야하타) 일본제철소,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등이다. 배상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들은 몇 년이 지나도 배상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에 대한 자료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서 배상판결이 난 미쓰비시그룹과 일본제철소에 양양군에서 끌려간 이들도 적지 않다. 이미 전국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추가로 배상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양양철광·삼척광산으로도 많이 끌려가
피해자들은 태평양과 일본뿐 아니라 국내 산업체에도 많이 끌려갔다. 강제동원자명부를 보면 양양군 피해자 23명이 양양철광으로, 6명이 원산으로, 7명이 함북 무산철광으로, 2명이 함북 경흥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 심한 노역에 시달렸다고 응답했다.
양양철광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강제동원지였다. 강제동원자 명부에는 양양군과 명주군, 강릉군, 홍천군 등 강원도와 충남 천안군과 전북 부안군까지 50명이 양양철광으로 끌려온 것이 확인된다. 양양철광은 당시 일본 대기업인 종방(종연방직, 가네보)에서 경영했다. 종방은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1941년부터 양양철광에서 매일 평균 210톤의 철광을 캐서 속초항을 통해 야하타 일본제철소로 반출했다.
지난 2005년 5월 20일자 <강원일보> 보도에 따르면, 양양군 양양읍 구교리 김성영씨는 “작고한 형님 고 김창영씨가 1945년초 징집되어 양양철광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며, 낡은 사진과 함께 강제동원 피해신고를 접수했다.
양양 지역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941년 양양역에서 서면 장승리 광업소까지 개설된 철로 공사 중에 서선리 안경다리 공사가 가장 힘들었는데, 전라도 일대에서 동원된 보국대원들이 공사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미 1940년대 들어 근로보국대라는 이름으로 많은 민간인이 강제동원되었다. <매일신보> 1941년 1월 26일자 기사에 따르면, 속초근로보국대 25명이 속초면직원의 인솔하에 삼척무연탄광으로 2개월간 노역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 삼척 탄광뿐만 아니라, 삼척의 삼화철광산과 제철소에도 많은 이들이 강제동원되었다. 강제동원자 명부에는 삼척 탄광과 삼화철산 등지에 동원되었다는 피해자가 48명에 이른다.
그동안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은 국외 동원에만 한정되는 바람에, 많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정부의 지원활동에서도 배제되었다.
매곡일기에 나오는 강제동원 피해
속초 상도문마을의 유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은 평생동안 일기를 썼다. <매곡일기>에는 해방 전 태평양전쟁 즈음해 일제의 공출 수탈과 징용과 징병 등 강제동원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여러 번 나온다. 강제동원에 대한 내용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해당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 1940년 6월 27일 박용각이 군대 가는데 떠남을 고하였다.
· 1940년 6월 28일 군대 가는데 전별하려고 큰 아이들이 대포에 내려갔다.
· 1944년 6월 23일 사람들이 와서 마을 가운데 보국대 다섯 사람이 나타난 것을 이야기하였다.
· 1944년 6월 24일 사람들이 보국대를 피하고자 간간이 도망치고 숨었다.
· 1944년 7월 14일 마을에서 보국대 두 사람이 갔다.
· 1944년 8월 14일 권수가 저녁에 속초 보국대 사역에 나갔다.
· 1944년 12월 18일 족손 봉현이 보국대로 일본 포지방에 들어갔다가 30개월 만에 돌아왔다.
· 1945년 1월 23일 박기흥 가아(家兒)가 징병되어 나감에 마을 사람들이 전별하였다.
· 1945년 2월 14일 보현이 징병되어 갔다.
당시 농촌마을은 공출로 인한 수탈로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일제는 전시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1940년부터 미곡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을 금지하고, 집에서 먹을 미곡도 헐값으로 강제공출로 거둬갔다.
대신 만주에서 들여오는 콩, 조 등을 배급하였다. <매곡일기>에는 당시 마을 사람들이 가혹한 세금과 공출로 얼마나 굶주렸는지 수 차례 언급되어 있다.
· 1942년 5월 24일 배급식량이 넉넉하지 아니하여 백성들 다수가 배고파 울었다.
· 1942년 12월 10일 농가에 양식을 구하는 근심이 많으니 어찌하겠는가?
· 1943년 10월 29일 세금을 징수한 것이 혹독하고 심하여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1943년 11월 13일 사람들이 굶주림에 울부짖으니 어찌하겠는가?
지난 2020년 5월 속초문화원에서 발간한 <상도문 돌담마을-돌담따라 이야기 한자락>에도 상도문마을 주민들의 일제강점기 징용피해 구술 내용이 실려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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