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고 관악부가 문을 닫게 되자, 동창회와 지역사회에서 비판의 여론이 들끓었다고 했다. 필자는 이런 내용의 글을 <우리 지역 관악부 이야기>에서 읽고 처음엔 별로 수긍이 안 되었다. 속초고 관악부가 문을 닫았어도 당시에는 속초중 관악부가 있었다. 그러므로 지역 행사에서 속초중 관악부가 속초고 관악부 역할을 하면 되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일을 차근차근 다시 한번 곱씹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관악부가 동원되는 행사가 너무 많았다, 현충일 행사는 기본이고, 3·1절, 향토예비군 창설일 행사, 6·25, 개천절 행사 등등 국가적 행사에다 각종 지역 행사에도 대부분 관악부가 동원되었다. 외부 행사는 그렇다 치고, 해마다 받아야 하는 교련 검열에도 관악부가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속초중 관악부 한 팀만으로 모든 행사를 다 치러내기에는 무리였다. 프로 악대도 아닌, 학교 아마추어 악대가 이런저런 행사마다 다 동원된다면, 그건 심각한 학습권 침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속초중 관악부와 속초고 관악부는 연주 기량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속초중 관악부에는 음악 선생님이 계시고 속초고 관악부에는 음악 선생님이 안 계셨다. 하지만, 속초고 관악부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관악부 생활을 거쳐서 입단한 부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18회 박태이 선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태이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관악부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속초중 관악부를 거쳐 속초고 관악부에 입단한 경우이다. 19회 허승훈 선배는 중학교 때부터 관악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고경력 관악부원들이 있는 속초고 관악부가 속초중 관악부보다 당연히 실력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중학교 관악부보다 고등학교 관악부가 더 적합한 행사도 있다. 군부대 관련 행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아무튼 당시 모든 상황을 볼 때, 속초고 관악부의 활동이 중단되었다는 것은 그냥 학교 음악동아리 하나가 문을 닫았다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결국, 평소 관악부에 무심하던 학교도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속초고 관악부 최전성기 때의 악장 18회 박태이 선배를 관악부 재창단 책임자로 내세웠다. 그리고 관악부가 다시 문을 열게 된 것이다. 23회 임수철 후배 말에 의하면, 그때가 여름방학 직전이었던 1974년 7월 중순 무렵쯤이었고, 그렇게 재창단하여 첫 연습 시간에 태이 형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관악부가 문을 닫았을 때, 엄청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태이 네가 책임지고 관악부를 다시 살려내라고 했다.”
다시 문 연 관악부에 지원자들 우르르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관악부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23회 후배들이 지원을 하였다. 23회 후배들은 그 유명한 58년생 개띠들이다. 그래서인지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23회 후배들은 기질이 평범한 것 같지가 않았다. 좀 극성맞고, 예능적인 끼도 넘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악부 지원자도 그렇게 많았던 것 같다.
그런 23회 후배들이 관악부에 많이 지원하게 된 과정에서, 당시 1학년 2반 담임 박상인 선생님의 역할도 매우 컸다. 수학 선생님이면서 학교 태권도 사범이기도 하셨던 박상인 선생님도, 필자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명문 국립 K사범대 출신이셨다. 그런데 교육자로서 품성은 필자 담임 선생님과는 정반대였다. 약간 거칠고 무뚝뚝하시긴 했지만, 속정이 깊고 음악을 무척 좋아하셨다. 그렇게 음악 애호가이시다 보니 관악부원 모집에도 담임으로서 매우 적극적이셨다. 그래서 박상인 선생님 반 관악부원들이 가장 많았다.
임수철 후배가 관악부에 들어오게 된 것도 박상인 선생님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한다. 임수철 후배에게 관악부 입단을 아주 강력하게 권유하셨다고 한다. 박상인 선생님은 그렇게 해서 관악부원이 된 임수철 후배를, 이름 대신 ‘우리 반 뺀드부장님’이라고 부르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임 후배가 관악부원인 것을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기셨다고 한다.
박상인 선생님 외에 박재양(상업) 선생님, 조동훈(화학) 선생님도 관악부에 대해 무척 긍정적이셨던 선생님들이었다. 관악부원들에게 ‘수고한다, 고생한다’는 격려의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다.
<계속>
<이순종 속초고 21회 관악부 출신>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